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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간 조선의 선비들
중고도서

일본으로 간 조선의 선비들

: 조선통신사의 일상생활과 문화교류

김경숙 | 이순 | 2012년 10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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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574g | 152*218*30mm
ISBN13 9788901151304
ISBN10 890115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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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있던 사람들 중 살아서 언덕 끝으로 나온 자는 다 벌거숭이였는데, 몹시 데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있고,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도 있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다. 광경이 너무 슬퍼서 차마 볼 수 없이 참혹하였다. 배에 들어가서 자던 비장·원역들이 물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곁의 배에 뛰어내리기도 하고, 밧줄을 따라 내려와 죽을 지경에서 살아나오느라 뼈가 부러지고 살갗을 다쳤다. 배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을 점검하며 차례로 호명해보니, 좌수영이 사령 1인과 창원의 악공 1인이 그 안에서 타죽었다. 함께 만릿길에 올라 겨우 바다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이런 참혹한 지경을 당하였으니, 다시 더 무슨 정신이 있겠는가!

원중거의 시선을 더욱 끈 것은 여인들이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열서넛 정도 되는 여자아이부터 대부분의 여성이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이국적인 느낌을 넘어 몹시도 신기한 풍경이었다. 아름답게 치장한 도시에 검고 흰 비단으로 화려하게 꾸민 여인들이 흰 얼굴에 검은 이를 하고 조용히 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 원중거의 눈에는 자연스럽지 않아 보였던 모양이다. 수많은 사람이, 더구나 여인들이 젖먹이까지 안고 나와 통신사의 행차를 구경하는 모습은 통신사에게 보이기 위해 동원되었다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 원중거는 “인간 세상의 괴이한 구경”이라고 표현하면서 일본이 공사지력(公私智力)을 다해 장황하게 과장하여 자랑하고자 하는 정상이 불쌍하다고 했다. 여인들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정황 속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본 것이다.

정유재란 때 포로로 잡혀온 74세의 노인을 만났다. 남원에서 아내, 네 누이와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와 종살이를 하면서 신을 만들어 팔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정유재란은 1597년에 발발해 이듬해 끝났으니, 이 노인은 60년 가까운 세월을 일본에서 종살이를 한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말을 잊지 않았고 죽어서 뼈라도 고국에 묻히기를 소원했다. 참으로 모진 세월이고 참으로 무능한 정부이며 참으로 가여운 백성이다. 그러나 남용익은 속수무책이었으므로 오직 노인을 불쌍히 여겨 술과 과일과 쌀을 주는 것으로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나마 덜었다. 그후 이 노인과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이상 기록이 없다. 쇄환하지 못했던 것이다. 노인은 일본에서 아들 손자를 낳았다고 했으니, 그 후손들이 지금 일본 어디선가 일본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숨긴 채 혹은 자신의 조상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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