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에 가면
엄마하고 나하고, 창경궁을 자박자박 사뿐사뿐...어느 봄날, 문득 창경궁이 가고 싶어졌습니다. 무엇에 이끌리듯 창경궁에 닿았고, 홍화문을 지나 궁 안으로 들어서니 활짝 핀 꽃들이 하늘하늘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지요. 아름다웠어요. 가지마다 하양빛으로, 분홍빛으로 매달린 꽃송이들,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는 연둣빛 잎사귀들, 한가롭게 날갯짓하는 까치들, 관람 온 유치원 아이들의 재잘거림... 이 모든 것들이 반짝이고 있는 순간. 그 순간에 나는 엄마가 떠올랐습니다.지금은 곁에 없는, 멀고 먼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가 항상 가고 싶어 했던 곳이 바로 창경궁이었거든요.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아담하고 수수한 창경궁은 그러고 보니 아늑하고 편안했던 엄마의 모습과 닮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천천히 창경궁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박자박 사뿐사뿐.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고, 모든 것이 좋았던 그 따스한 날, 작가는 그렇게 엄마와 함께 창경궁을 거닐었습니다. 엄마는 모든 순간에 함께 있었지요. 반짝이는 햇살 속에도, 바람을 타고 춤추는 꽃잎 속에도,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듣던 음악 속에도. 몹시 행복하고 설?던 그때 그 시간, 그 추억이 다시 꺼내어지기까지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저절로 싹을 틔웠고, 무르익었고, 마침내 이야기로 피어났습니다. [시간을 걷는 이야기] 첫 번째 책은 어린 연이가 엄마와 함께 창경궁을 자박자박 거닐었던 그 날, 그 시간의 이야기, 《창경궁에 가면》입니다.
제주에는 소원나무가 있습니다
제주도는 참으로 아름다운 섬입니다.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과 곳곳에 솟아 있는 오름, 푸른 목장을 뛰노는 말들과 탱글탱글한 감귤, 돌하르방,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과 해녀 등 아름답고 독특한 자연과 문화를 지닌 세계유산이자 신비한 볼거리, 맛있는 먹을거리가 가득한 관광지. 일 년에 몇 번씩 여행으로 찾아왔다 그 모습에 반해 중산간의 작은 마을에서 제주살이를 시작하게 된 작가가 이전에 알고 있던 제주도 '제주'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모습, 딱 그만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던 작가의 눈에 돌담 너머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나무가 들어왔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느 나무들과는 달리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무의 무게가 느껴지는 크고 넉넉한 품을 지닌 나무였지요. 나무는 하늘 높이 뻗어 있으면서도 땅 가까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낮게 드리운 나뭇가지에 하얀 종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었습니다.
작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 그 나무와 바람에 나부끼던 하얀 종이들, 그리고 그 나무가 서 있는 돌담 너머의 공간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그 나무가 서 있는 공간을 오가며 드나들기를 2년여, 작가는 자신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제주 이야기를 마침내 그림책으로 담아냈습니다. [시간을 걷는 이야기] 두 번째 책, 『제주에는 소원나무가 있습니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아름다운 제주, 그러나 우리가 잘 몰랐던 제주 이야기입니다.
우리 같이 걸어요 서울 성곽길
창의문 앞, 아빠와 아들이 거대한 지붕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육백스물다섯 살이나 된 북소문의 장엄함을 느끼며 둘은 안으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성곽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시가 새겨진 바위가 부자를 먼저 맞이합니다. 아빠가 눈을 감고도 줄줄 외우는 윤동주의 '서시'.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성곽이 나타납니다. 네모난 돌을 차곡차곡 쌓은 모습이 아이 눈에는 장난감 블록을 닮았습니다. 성곽 저편으로는 방금 지나온 창의문이 보입니다. 성곽과 창의문을 잇던 담장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궁금해 하고 있는데, 아빠가 재촉합니다. 아이는 의욕에 넘쳐 돌계단을 콩콩콩 신나게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양도성 순성길 인왕산 구간이 시작되는 그곳에서 두 사람은 본격적인 '성곽길 걷기'를 시작합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돌계단을 지나고, 성벽에 난 틈과 창에 다가가 바깥 풍경을 비교해 보고, 성곽 아래로 내려가 각기 다른 성돌들을 살피고, 가파른 경사를 올라 인왕산 바위 봉우리들을 만난 후, 드디어 정상에 오른 아빠와 아들! 오랜 역사를 지켜 온 서울의 장쾌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좁은 경사로를 따라 서로 손을 잡아 도와주면서 내려온 부자는 다음에는 또 다른 성곽길 걷기를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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