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독한 슬픔과 독한 아픔을, 도리어 유머나 우스개로 극복하던 아이들. 미국에서 아들이 이사를 마친 날, 서울의 우리도 너무 기쁘고 피곤해서(마음으로 이사 함께 하느라고) 딸씨와 함께 사우나에 갔다. 정해진 자리에서 목욕하던 나는 이 딸씨가 너무 피곤해서 어디 가서 뻗어 버렸나 하고 딸을 찾아 나섰다. 요즘 목욕탕은 로마 경기장만큼 넓어서 사람 찾기 쉽지 않다. 넓은 욕탕을 돌고 있는데 뒤에서 쿡 찌르며 나타난 딸씨.
되게 예쁜 여자가 지나가는 거야. 그래서 보니까 옴마야…….
그랬나.
점잖게 긍정하며 놈의 손을 꼭 잡으니 눈물이 나려 한다. 예순 가까운 엄마에게 그렇게씩이나 말해 줄 줄 아는 멋진 딸씨. 난 이제 죽어도 좋다 했더니 누리며 살아야지 점잖게 응수하던 딸씨. 이즈음 나의 심경은 바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였다. 이 감사의 깊이는 어제의 아픔의 골과 비례할 것이다.
--- p.154
나의 사추기에 가을까지 겹쳐서 쇼킹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집을 가도 시원찮을 과년한 딸이 느닷없이 바텐더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나저나 어쩌자고 딸내미는 바텐더가 되고 싶다는 것일까 내 상식으로 바텐더하면 떠오르는 것은 술, 여자, 밤이었다.
그건 옴마 시절 얘기지.
아주 간단하다. 아무리 시절이 변하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직업에 편견이 없다고 양보하려 해도 ― 내 아무리 진보한 옴마라 해도 ― 정말이지 머리에 쥐가 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딸씨는 우리 집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다. 딸씨의 굽힐 줄 모르는 자기 주장, 그리고 꺾이지 않는 긍지. 그러나 내 항변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큰놈도 거들고 나섰다. 편견이 전혀 없는 큰넘. 이 놈은 막내가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내가 사정해 보았다.
큰넘아, 네가 좀 타일러 봐라. 한 학기 남기고 이럴 수가 있느냐 네가 좀 설득시켜.
그랬더니 자기의 가슴을 엄지로 콕콕 찌르면서 내가 다녀봤잖아. 밍이 뜻을 존중하자는 거였다.
--- p.235
아득히 휘어진 철도를 따라 침목을 세면서 걸어 보았다. 침목과 침목 사이는 약 8~70센티미터니까 약 700미터 구간이다. 그 700미터 철도 코스에서는 뛴다. 간격이 좁아서 종종걸음 뛰기가 된다. 거의 줄넘기 수준이다. 즉 줄넘기를 천 번 정도 하는 셈이 된다. 산책 코스에 줄넘기 시간을 넣게 되자 더욱 즐거워졌다. 철길은 뛰기 코스이며, 바로 줄넘기 수준의 운동 코스가 되는 셈이다. 이 줄넘기 코스에서 심장의 박동을 최고로 높여주지 않으면 운동의 쾌감이 없다. 짧고 격렬하게!
어떤 목적을 부여하니까 철길은 훨씬 값진 코스로 탄생하게 되었다. 전에는 그냥 낭만적 원근법이 좋았지만, 거기에 박자와 율동을 넣어 체력 단련을 첨가한 것이다. 나는 이 구간이 참 좋다.
--- p.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