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결코 쉽지도 않지만 그렇게 절망적이지도 않은 것
--- 강현정 (jude55@yes24.com)
나는 쉽게 읽히고 감성을 과도로 자극하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소설과 같은 류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건조하고 딱딱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적당하고 균형잡힌 스토리 전개와 감성적인 요소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는 소설을 선호하는 편인데, 제 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정한아의 『달의 바다』는 그 두 가지를 두루 갖추고 있는 깔끔한 소설이란 느낌을 받았다.
『달의 바다』의 인물 구성은 지극히 가족 관계 중심의 양상을 띠고 있는데, 그에 따라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수는 많지 않다. 스물 일곱 살의 백수인 여주인공 은미와 트랜스 젠더가 되고 싶어하는 그의 소꿉친구 민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이 소설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고모 등이 그들이며, 비교적 등장인물이 소수인 까닭에 작품을 읽으면서 흐름을 따라가는 것에는 그렇게 무리가 없다. 작가는 13년 간이나 만나지 못하는 상태로 있었던 고모와 은미가 직접 만나는 구성을 통하여, 거의 끊어져 있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놓는 작전을 편다. 주인공 은미의 나이와 작가의 실제 나이가 같다는 점이 재미있었는데 ‘소리 없이 가장 빠르게 죽는 방법을 연구하는 20대 중후반의 취업 낙방생‘이라는 설정은, 어쩌면 정한아 작가가 자신이 아직은 방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주인공의 캐릭터에 자신의 실제 모습을 투영시킨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소설 속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가슴을 울리는 대사들이 꽤 등장하는데,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의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믿지 못할 만큼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참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이러한 것들이다. 은미와 민이의 대화에서, “슬리퍼 장사라는 게 남자로서 너무 야망이 없는 거 아닌가.”라고 말하는 민이에게 은미는 “그게 기쁨일 수도 있잖아."라면서 인생의 즐거움은 무엇을 이루느냐는 결과치의 척도가 아닌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그것에서 위안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나, 민이가 트랜스젠더가 된다고 해도 백화점에 가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탈의실 밖에서 겉옷을 들고 기다려 줄 수 있다고 하면서 언제든지 곁에 있어 주는 게 진짜 우정이라는 정의를 내리는 부분이 그것이다. 읽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글을 써 내는 작가의 역량에서, 그 안에 내재된 작가로서의 잠재가능성을 볼 수 있었고,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론가들이 입 모아 말하듯이 소설의 백미는 아마도 고모의 편지들일 것이다. 당연히 직접 우주여행을 해 본 적이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상세히 묘사해 놓은 우주여행 관련 디테일들은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었고,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반전은 꿈꾸는 것과 그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꿈에 대한 갈망에 대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떻게 보면 ‘우주 여행’ ‘우주 비행사’라는 설정은, 현실에서는 꿈꾸지만 정말 실현할 가능성이 0프로에 가까운, 극단적으로 허구적이고 환상적인 테마를 강조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라는 고모의 말처럼 결국 『달의 바다』는 지금까지 지탱해 온 삶과 아직 다 펼쳐지지 않은 삶 모두를 긍정의 눈으로 보게 해 주는, 희망적인 시각을 길러주는 따뜻한 메시지다. 세상의 통념을 깨뜨리고 민이가 그토록 원했던 트랜스젠더 수술을 받는 것에서, 방에 박혀 글만 쓸 줄 알았던 은미가 이대 갈비에 출근하면서 또 다른 삶을 경험하고 삶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모습에서 그러한 부분은 여실히 드러난다.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하여 삶은 결코 쉽지도 않지만 그렇게 절망적이지도 않고, 꿈꾸어 왔던 것이 언제나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바로 삶이고 인생임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