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의 웃음은 언제나 한 집단의 웃음이라고 할 수 있다. 기차나 음식점의 테이블에서 여행객들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지러지게 웃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는 아주 우스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들과 같은 일행이라면 누구나 웃게 된다. 그러나 일행이 아닌 사람에게는 웃을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다. 설교를 듣고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데 유독 울지 않는 사람이 있어 물어보았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이 교회 소속이 아니랍니다.” 눈물에 대한 이 사람의 생각은 웃음에 더 잘 적용될 것이다. 사람들은 웃음이 솔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웃음에는,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함께 웃는 타인들과의 일치된 생각, 말하자면 일종의 공범 의식 같은 것이 숨어 있다. 극장에서 관객의 웃음은 장내가 가득 찰수록 더 커진다는 것, 이는 얼마나 많이 이야기되어온 사실인가?
--- pp.15-16
이렇게 해서 파스칼이 『팡세』의 한 구절에서 제기한 작은 의문이 풀린다. “서로 닮은 두 얼굴이 특별히 웃음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인은 없는데도 함께 있으면 그 유사함으로 인해 우리를 웃게 한다.”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설가의 몸짓은, 그 자체로는 그다지 우스꽝스럽지 않아도 반복이 되면 웃음을 자아낸다.” 그 이유는, 살아 있는 생명은 결코 반복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반복이 있고 완벽한 유사함이 있으면, 우리는 살아 있는 것 뒤에 기계적인 것이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너무나도 닮은 두 얼굴에 대한 인상을 분석해보라. 그러면 아마도 똑같은 틀에서 얻어낸 두 개의 견본, 혹은 같은 도장 자국, 또는 같은 원판에서 인화된 두 장의 사진, 결국 산업 제작 방식을 연상하게 됨을 깨닫게 되리라. 생명이 기계적인 것으로 방향 전환하는 것, 여기에 바로 웃음의 진정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 p.41
삶에서 모든 진지함은 우리의 자유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오래 간직했던 감정이나 은밀히 품었던 열정, 깊은 생각 끝에 결정해서 실행했던 행동, 이 모두가 우리의 것인바, 이 때문에 삶은 심각하고 때로는 극적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희극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자유를 조종하는 실이 숨겨져 있다고 상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pp.86-87
물건과 비슷한 면이 있는 사람은 희극적이 된다. 인간이 하는 일인데도 뻣뻣하기 짝이 없어서 마치 순전한 기계장치, 자동주의, 말하자면 생명이 없는 기계적 움직임을 흉내 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희극성이란 즉각적인 교정을 요하는 개인과 집단의 결함을 나타낸다. 웃음은 이것을 교정한다. 웃음은 이런저런 사람이나 사건에서 보이는 특정한 방심 상태를 두드러지게 만들며, 그것을 응징하는 사회적 의사 표시인 셈이다.
--- p.94
우리는 이미 희극적 인물의 결함이 정신 혹은 성격의 완고함, 방심, 기계적 동작 등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희극성의 근저에는 어떤 종류의 경직성이 있다. 바로 이 경직성으로 인해 자기 길만을 줄곧 고집하고, 그 어떤 것도 귀담아듣지 않으며, 아예 아무것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몰리에르 연극의 수많은 희극적 장면 모두가 이 단순한 유형으로 귀결되고 있지 않는가! 자기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힌 인물은 아무리 만류해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각으로 되돌아간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결국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보려는 사람으로 서서히 이행해간다. 고집불통의 정신은 사물을 보고 사물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자기 생각에 끼워 맞추도록 한다. 그러므로 희극적인 인물은 모두 다 우리가 조금 전에 묘사한 망상의 길 위에 있으며, 돈키호테는 희극적 부조리의 보편적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 pp.188-189
이렇게 보면 웃음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반복하건대 분명 선하지도 않다. 웃음의 기능은 모욕을 줌으로써 상대방을 위압하는 것이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천성적으로 약간의 짓궂음이나 상대방을 놀려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면, 웃음은 성공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으리라. 즉 긴장의 이완과 확산은 웃음의 서막에 불과하고, 웃는 사람은 금세 자신으로 돌아와 다소 오만한 마음가짐으로 타인을 자신이 조종하는 꼭두각시인 것처럼 취급한다. 게다가 이러한 자만심에는 어느 정도의 이기주의도 도사리고 있다. 이기주의의 배후에는 덜 즉흥적이고 더욱 신랄한 무엇인가도 웅크리고 있다. 그것은 정체 모를 비관주의라고나 할까, 웃는 사람이 자신의 웃음을 분석하면 할수록 더욱더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 pp.20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