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시리아 난민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2014년 9월 보수연합정부를 이끌고 있던 스웨덴 총리 레인펠트(John Reinfeldt)는 난민을 위한 복지비용이 급상승하고 있지만 열린 마음으로 이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총리의 발언은 당시 국민에게서 비난을 샀다. 사안을 경제적인 잣대로 따진다는 것 자체가 비인도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스웨덴인이 보여준 평등과 관용의 가치관은 여느 문화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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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국가들은 세속적·합리적 가치와 자아표현가치에서 모두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한다. 한국은 세속적·합리적 가치는 높으나 자아표현가치가 생존가치보다 낮다. 북유럽 국가들과 한국의 이런 특징은 조사가 처음 시작되고 약 35년간 거의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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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복지체제를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생산에 참여하거나 사회비용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과제다. 복지서비스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이고 사회책임에 충실한 시민, 공동체와 지역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요구된다. 이민자들의 집단거주지를 대상으로 지역주택공사,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가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략을 시행하여 주민들의 자율성과 참여를 자극, 교육하고 사회에 통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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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이민정책의 핵심도 이민자들이 생산적인 시민, 납세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시민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 노르웨이의 망명자나 이민자는 기초자치단체가 제공하는 근로교육에 참여하여 노르웨이의 언어와 사회를 공부한다. 이 기간에 회사에서도 언어와 기초업무를 배울 수 있다. 이민자 근로교육은 전업제로 할 경우 2년이 걸리며 그동안 재정을 지원받는다. 노르웨이 시민권자 가운데 실업한 지 오래되어 국가의 재정지원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도 있는데, 개인 맞춤형으로 교육하여 노동시장 재진입을 돕는다. 이 교육은 전업제로 1년이 걸리며 역시 재정을 지원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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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남성 시민단체 활동가: 노르웨이는 나눔의 가치가 전통적으로 지배한 나라다. 석유산업 이전에 수력개발로 경제가 발전했는데, 정부와 의회가 논의하여 수력개발의 면허권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로써 어느 개인도 수원과 수력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하고 개발권만 지니게 했으며 일정 기간 후 다시 국가에 면허를 반납하는 제도가 정착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정부가 현명했던 것 같다. 수력도 다른 자연자원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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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남성 관리자: 수상이나 왕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았고, 그런 모습을 계속 접하면서 평등이라는 가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다. 1973년 석유파동 당시 차가 제대로 운행되지 않을 때의 일이다. 겨울에 스키를 타러 갔는데, 언덕까지 올라가야 하건만 운행하는 차가 없어 모두 트램을 탔다. 그런데 왕도 트램을 탔다. 왕 옆에 앉은 여성은 그가 왕인지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게 우리 사회가 운영되는 방식인 듯하다. 1969년 영국 여왕이 방문하기 며칠 전 보르텐 수상이 신문사와 인터뷰했는데, 속옷 차림에 모자를 쓰고 슬리퍼만 신은 모습이 전면에 실렸다. 실제로 그는 농부 출신으로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일상적인 차림이었을 것이다. 그게 우리 수상의 모습이었다. 한 영국 신문(『데일리미러』)은 그 사진을 소개하며 제목으로 「노르웨이 수상이 영국 여왕 맞을 준비를 마쳤다」라고 썼다. 국민은 기사를 보고 웃으며 즐거워했고 수상을 옆집에 사는 이웃처럼 친근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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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는 스웨덴, 핀란드처럼 주류독점판매점인 빈모노폴레(Vinmonopolet)를 운영한다. 빈모노폴레는 1922년 설립된 국영기업인데, 당시 심각한 알코올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당 정부의 결정이었다. 2016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퍼센트가 주류독점판매제도에 찬성하고 있다. 자유가치 못지않게 기본적인 사회규칙을 엄수하려는 성향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이 제도에 절주효과가 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부가적으로 술에 관한 고급정보와 안내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반기고 있다.
--- p.215
노르웨이는 OECD에서 두 번째로 1인당 의료지출이 높다. 북유럽 국가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1인당 의료비의 85퍼센트를 정부가 부담하여 공공성이 매우 높다. 난민과 망명자들에게도 관대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의료정보통합시스템은 정보공개와 신뢰를 기초로 하는데, 노르웨이는 그 점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의료정보통합시스템은 아직 낯선 제도이지만 자료를 통합하여 의료기술을 발전시키고 의료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 p.239
40대 남성 사무직: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노르웨이 교육의 가장 큰 강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부터 선택의 폭이 넓고 개방되어 있다. 대학에서도 모두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다. 부자가 아니어도 대학교육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 노르웨이는 보통 사람을 위한 일반교육에 강점이 있다.
--- p.274
국제비교에서 보면 PISA 성적이 특별히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 노르웨이는 다른 분야에서 높은 교육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문헌접근성, 영어능력, 정보통신역량, 건강수준 등이 대표적이다.
--- p.283
스웨덴은 높은 세율에 매우 긍정적이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의 북유럽 세 나라와 일본, 한국, 중국의 동아시아 세 나라를 대상으로 근대화와 탈물질주의 가치를 조사한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조사에서 스웨덴은 노령, 실업, 보편주의 교육 같은 사회복지뿐 아니라 대외원조와 환경보호 등 제시된 모든 항목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견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 p.313
바이킹의 역사와 문화 역시 공동체를 강조했다. 스웨덴 바이킹들은 연회를 열어 큰 술잔에 술을 따라 나눠 마시는 풍속이 있는데, 마지막 남은 사람까지 술을 즐길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바이킹의 규칙들에서 공동체가 질서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항상 사물과 상황을 잘 정리하고 조직화할 것,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흥미로운 활동을 개발하되 모든 사람이 각자 유용한 역할을 할 것,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모든 구성원이 함께 의논할 것 등이 규칙으로 강조되었다.
--- p.333
스웨덴의 전통가치를 대변하는 러곰은 ‘지나치지 않게 보통으로’, ‘평범하게’ 등의 뜻을 지닌, 온건함과 중용의 의미가 담긴 개념이다. 극단을 피하려는 노력은 정치권에서부터 시도되었는데, 무엇보다 극우성향의 정당과 사회적 움직임을 경계했다. 2005년 덴마크의 일간지 『율란스포스텐』에 마호메트를 풍자하는 만평이 실리면서 논란이 되었을 때 덴마크 정치권은 공식 언급을 회피했지만, 스웨덴은 해당 만평이 게재된 극우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 p.353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건강관리에 매우 바람직하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스웨덴의 흡연율은 북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낮고 꾸준히 줄고 있다. 음주량은 OECD 평균이나 한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데, EU의 자료에 따르면 유럽에서 가장 낮다.
--- p.374
스웨덴 의료는 전반적으로 높은 성과를 보인다. 응급질환에서 특히 우수한데,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공의료체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긴 대기시간이 심각한 문제이지만 의료의 전문성과 기술수준이 높고 비용장벽이 없다는 점이 성과에 이바지한다.
--- p.425
스웨덴의 사회문화는 운동과 건강관리에 적극적이다. 교육에서도 정규적인 체육교육으로, 또 자발적 스포츠클럽활동으로 독립심과 자기관리의 가치를 가르친다.
--- p.435
스웨덴 교육체계는 사회구성원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학습경로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개인은 자기 삶에 대한 기대와 경로에 맞춰 교육과 직장생활, 가정생활을 자유롭게 설계하고 변형할 수 있다. 현장조사에서 이러한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스웨덴 교육체계의 강점은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어도 여전히 배움의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 p.452
흔히 공교육과 보편주의 교육은 하향평준화를 초래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그런 생각에 반대되는 결과를 보여준다. 보편주의 기초교육으로 기본역량을 충분히 갖출 수 있고, 더 많은 교육을 원하는 이들은 상급교육기관에 진학하여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기 때문이다.
--- p.476
덴마크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근로와 납세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 p.496
덴마크인은 어려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부부나 동거인 간의 관계가 일방적이거나 의존적이지 않고 주체 간의 독립과 균형을 추구한다.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구성원 모두 동일하게 대우하고 대우받으며 또한 나이 때문에 열등계급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가정에서 독립하여 생활하며 그전부터 독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p.515
한센은 덴마크 사회에서 나타나는 포용이나 관용의 원칙을 일찍 주목한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덴마크인은 내부인과 외부인을 양분하지 않고 공동의 단위로 함께 포괄하여 사회정황을 파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유대인을 구출한 사건 그리고 독일소수민족에 대한 소수집단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있다.
--- p.535
덴마크 의료제도는 사회구성원 누구나 의료서비스에 동등하게 접근할 권리가 있다는 보편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며 조세를 주된 재원으로 운영된다. 덴마크 의료체계는 일차의료기관, 상급의료기관으로서의 병원 그리고 기초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각종 준의료돌봄시설을 포괄한다. 개개인에 대한 돌봄의 장기적인 목표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게 하여 의료시설의 활용을 최대한 줄이고 가능한 한 자택이나 다른 거주시설에서 서비스받도록 하는 것이다.
--- p.555
60대 남성 퇴직자: 미국의 제도에 대해 믿어지지 않는 많은 얘기를 듣고 있는데, 그런 곳에 살고 싶지 않다. 미국에 사는 한 친구가 5년 전 딸을 낳았다. 출생 당시 인큐베이터 등 특수장비에 의존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대출을 많이 받아서 아이가 지금 다섯 살인데도 여전히 출산비용을 갚아나간다니, 여기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데, 그게 미국의 현실이다. 우리 민간의료제도도 그리될 가능성은 없는지 염려된다. 덴마크에서는 출산 후 아이와 엄마를 바로 집으로 돌려보내는데, 입원 당시에는 최상의 진료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무료라서 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적절한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이 작동한다.
--- p.587
덴마크는 ‘모두를 위한 교육’을 철학으로 모든 단계의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보편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교육기관에 대한 지출을 기준으로 하면, 초등교육,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까지 총예산의 공공재정 비중은 97퍼센트다. 대학에 대한 공공재정 비중은 95퍼센트로, 다른 교육과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부담이 높다. 대학을 제외하면, 초등학교부터 모든 정규 과정 교육기관에 대한 지출의 97퍼센트가 공공재정으로 충당되는데,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100퍼센트 공공재정으로 충당하는 것에 비하면 사부담이 있는 편이다.
--- p.625
덴마크 교육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제도의 특징에서도 확인된다. 덴마크는 일괄적인 교육제도를 따르는 표준화된 교육을 추구하지 않는다. 일반의무교육이 법제화되었지만, 1849년 만들어진 헌법에 명시된 바처럼 의무화한 것은 ‘교육 자체’(education itself)이지 ‘학교에 다니는 것’(schooling)이 아니다. 이 때문에 덴마크는 대안학교의 천국이라 할 만큼 자율적이고 대안적인 교육기관이 많다.
--- p.634
현재 공립학교법은 교육목표의 하나로 학생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 참여하고, 공동체에 책임을 느끼며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평등과 공동체주의, 국제적인 지식과 민주주의, 인권 등을 가르친다.
--- p.653
북유럽 공공가치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가치와 사회가치가 견고히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은 타인과의 연대와 협력에 적극적이며 평등을 중시하는 보편주의와 관용의 가치를 함께 추구한다. 이런 규범적 성향은 오랜 역사를 거쳐 정착된 문화적 이점이다. 또한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보편주의 복지체제가 정착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 p.677
한국의 생존가치는 높은 소득수준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동북아시아와 북유럽 국가들 간 정치문화의 비교연구를 해온 정치학자 헬게센은 한국의 생존주의와 관련하여, “북유럽 사람들도 자기 나라의 제도와 정책에 개인적으로 불평하고 불만이 많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생각 깊은 곳에는 보호받는다는, 극단적으로 힘들 때는 제도와 국가가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라고 하며 두 세계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런 최후의 보호막이 없으면 개인은 절망에 빠지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데, 그 수단이 항상 정당하고 적법할 수는 없다. 생존가치는 그런 면에서 제도와 정책을 왜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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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을 도입할 경우, 내용과 절차 못지않게 배경이 되는 가치와 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치의 이질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예측하여 어느 정도 보완하고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기술적 제도 중심으로 유럽식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도입, 확대해온 경향이 있다. 최근 10여 년간에도 누리교육, 방과후프로그램, 치매국가책임제, 지방자치단체별 기본소득제도 등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프로그램마다 서비스공급자의 부족한 사회책임, 수요자의 높은 기대와 과도한 권리의식, 시설난과 재정부족 등이 겹쳐 갈등이 적지 않다. 선진적인 진보정책을 도입하여 형식적인 제도운영 매뉴얼만 익힐 것이 아니라 수요자와 공급자의 가치에 대한 고민과 학습이 필요하다.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가 전하는 정책적 시사점은 연구와 실무에서 모두 의미 있을 것으로 본다.
--- p.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