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충청북도 옥천군 읍내면 향청리(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지용(池龍), 세례명은 프란치스코(方濟角)이다.
일본 유학 중이던 1926년, 『학조』에 「카페·프란스」등 9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3년에 김기림, 김유영, 유치진, 이무영, 이종명, 이태준, 이효석, 조용만과 함께 구인회라는 문학 동인회를 창립하였으며, 1935년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다. 1941년에 그가 발간한 시집 《백록담》은 청록파(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에 영향을 주었다. 1946년에 시집 ≪지용시선(芝溶詩選)≫을 발간했으며. 좌파 문인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아동분과위원장으로 추대되었으나 활동하진 않았다. 1949년, 좌익으로 분류되어 교과서에 실려있던 그의 작품은 모두 삭제되었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납북되었다고 알려졌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1950년 9월경 6.25 전쟁 중 폭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월북 시인으로 오인되었으나 학계에서 강제납북설을 제기해 해금운동을 벌였고, 1988년 공식적으로 그의 작품이 해금되었다. 그 해 지용회가 결성되었으며 1989년에는 지용시문학상이 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