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와 약한 자가 서로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는 너그러운 사회는 누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지구상에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폭력적으로 지배하고, 약한 자들이 자유를 빼앗긴 채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나라들이 아직도 많다. 우리나라도 지금과 같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고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노력해 자유를 얻어냈다. 만약 그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자유와 행복을 기다리기만 했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어땠을까?
… ‘겨우 십몇 년 후에 세상이 이렇게 비참해진단 말이야?’라는 느낌에 미래에 대한 작가의 상상이 너무 어둡고 비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 모두가 마음과 힘을 합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이런 비참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스모그와 오팔리아 부부, 프레데와 비르질리아 부부처럼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힘을 보태고, 이리엘과 놀란, 조드처럼 비참한 삶을 살고 있어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잃지 않고 노력해야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옮긴이 후기 중에서
이리엘은 조드가 가져온 물병의 물을 새끼손가락에 적셔 아기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아기의 조그만 입술을 조금 벌려 혀 위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안녕, 아가. 나는 이리엘이야. 내가 너를 발견했어. 이제 너는 외롭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아이는 조드야. 조드는 네 오빠가 될 거야. 조드와 내가 너를 영원히 지켜줄 거야.”
아기가 이리엘의 손가락을 조금씩 빨기 시작했다.
“이제 됐어! 아기가 손가락을 빨아.”
조드가 감탄했다.---p.23
이리엘은 열 살 때 하수도에 왔다. 지난 1월 1일에 열일곱 살이 되었으니, 그때로부터 벌써 칠 년이 지났다.
당시 이리엘의 어머니는 이 년 동안 일자리가 없었다. 새로운 일자리도 찾지 못했다. 일자리가 없이 놀고 있으니 사람들은 더욱 일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저주와도 같았다. 저주는 이리엘 아버지에게도 찾아왔다. 이리엘 아버지가 일하던 서점이 문을 닫았다. 이리엘의 부모님은 오래된 아에로솔로를 팔았고, 몇 달이 지난 뒤에는 살던 집을 떠났다. 우선은 캠핑 트레일러에서 살았다. 하지만 시에서 이리엘 가족을 쫓아냈고, 이리엘 가족은 노숙을 해야 했다.---p.41
놀란의 두려움은 놀라움에서 나왔다. 존재감, 몸짓, 말 등 이리엘의 모든 것이 놀라웠다. 이리엘이 만일 배신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을 때도 그 말이 무리 없이 믿어졌다. 어린 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이리엘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말수가 적고 단호한 소녀 이리엘에게 악의는 전혀 없어 보였다.
게다가 놀란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이리엘이 한 말들이 놀란의 혈관 속에서 고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놀란은 이리엘 목소리에 흔들흔들 몸을 맡겼고, 이리엘이 한 말들은 놀란의 마음속에 길을 냈다. 이리엘과 조드, 모이자 세 아이가 놀란에게 새롭고 다채로운 감정들을 유발했다.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평온함이 놀란을 부드럽게 감쌌다.---p.82
“야간 경비원들이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우리를 보고 경찰에 신고한 것 같아. 경찰들은 지하세계 아이들을 붙잡아 가거든. 하지만 죽이지는 않아, 이리엘. 경찰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아. 어린아이도, 갓난아이도. 그러니까 조드와 모이자의 생명은 위험하지 않아. 그 애들은 죽지 않을 거야. 경찰들은 그 애들을 어디론가 데려갈 거야. 우리가 그 애들을 찾아내면 돼. 그리고…….”
“어디로 데려가는데?"
마침내 이리엘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우리가 그 애들을 찾아낼 거야.”
“맹세해.”
“맹세할게.”---p.137
놀란은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림해보았다. 부랑아들이 놀란을 촘촘히 에워싸고 있었다. 도망갈 방법은 전혀 없었다. 갑자기 옌틀란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 놀란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렸다. 놀란은 충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그러나 즉시 정신을 차렸다. 놀란은 머리를 숙여 옌틀란의 배를 들이받았고, 옌틀란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놀란은 옌틀란이 일어날 틈을 주지 않고 달려들어 옌틀란을 꼼짝 못하게 내리눌렀다.
“이제 내가 대장이야. 그렇다고 이 아이들에게 말해.”
놀란이 말했다.
---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