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마음의 눈은 날이 갈수록 더 밝아져야 한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온 세상도 밝아진다.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마음의 눈에는 다 또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8일)
지금 나와 인연 맺어진 일과 모든 인간관계는 다 ‘나’로부터 빚어진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 내가 뿌린 씨앗과 내가 선택했던 것들이 불러온 결과다. 그러니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원인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다. (38일)
우리에게는 행복의 소재가 이미 다 갖추어져 있다.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겪어오고 누려온 세월과 공간이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불행의 객으로 남기도 한다. 즉 행복의 소재는 나와 남이 모두 똑같이 갖추고 있으니, 관건은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내 마음이 열려 있으면 그것이 다 행복의 소재가 되지만, 마음이 닫혀 있거나 어두우면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때로는 오히려 불행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내 마음만 활짝 열려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 (80일)
쇠는 불에 달구어야 강해지듯이 사람도 고난과 역경을 통해 강해진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면 크나큰 고난과 역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은 삶의 소중한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난과 역경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곧이어 찾아오게 될 희망의 전주곡인 셈이다. (125일)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시간이 나도 역시나 공부를 하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 기도 못한다는 사람은 시간이 나도 역시나 기도를 하지 않는다.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135일)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로 태풍이 시작되기도 한다. 팔랑거리는 날갯짓 하나로 바람이 일어나 이윽고 태풍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는 결코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서로 얼기설기 얽힌 인연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인 것이다. ‘나’ 하나로 인해 내가 속한 공동체 전체가 욕을 먹기도 하고 칭찬을 듣기도 한다. 아이가 밖에 나가서 행동거지를 잘못하면 집안 전체가 손가락질받게 되는 것과 같다. ‘나’ 하나로 인해 전체가 행복해질까 아니면 불행해질까, 이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142일)
지혜가 넘쳐나는 사람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 화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솟아나는 것인데, 지혜가 넘쳐나는 사람은 마음이 늘 맑고 고요해서 화가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방편으로 화를 내는 시늉을 할 따름이다. 화는 만병의 근원이다. 성을 내면 상대방의 마음에도 상처를 주지만, 그보다 먼저 자기 몸이 망가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를 제대로 다스리는 길은 오직 수행밖에 없다. (154일)
방생 중에서도 가장 참된 방생은 스스로를 방생하는 것이다. 미물을 방생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먼저 스스로를 방생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편견과 시기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자신을 옥죄며 괴로워한다. 이때는 불교 수행을 통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줄 필요가 있다. 진정한 방생은 미물을 산 채로 놓아주는 방생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는 생활 속의 방생이 되어야 한다. (172일)
살아가다 보면 어느 정도의 고집은 필요하다. 하지만 ‘슬기로운 고집’이어야 한다. 우왕좌왕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고집, 막무가내가 아니라 나와 남에게 이로움을 주고 그로 인해 자기를 승화시킬 수 있는 ‘현명한 고집’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고집이 인생에서 정녕 필요한 것이자 가치 있는 것이다.
---「183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