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가진 직관력은 실제 세계, 즉 참된 것의 수용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는 실제 세계와 거짓된 모조품 양쪽 모두에 대해 종노릇할 수는 없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상기시켜준 것처럼, 예술가의 임무는 “세상보다 더 큰 진리의 말 한마디”를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되는 것이다. 이 진리를 담은 말 한마디가 예술가로 하여금 그 시대의 사고방식과 편견 너머로 솟아오르게 하고, 그의 예술을 통해 다른 사람들까지도 이런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든다. 위대한 예술가는 거짓과 불의, 절망스러운 황폐함으로 눈이 어두워진 세상에 진리와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이 한마디 진리의 말은 정의와 아름다움을 지탱하고 있기에, 미혹하는 판타지에 지속적으로 자신을 열어온 마음은 그 진리를 헤아릴 수가 없다. 이런 공상은 과도한 성적 희열을 주는 심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한 인격과 그의 세계를 산산조각 낼 거짓의 말(미혹)로 이끌고 간다. ---「4장」중에서
엘로힘은 하나님의 주요 이름들 중 하나로, 성경에서 하나님을 언급할 때 2,701번이나 사용된다. 히브리어 단어 엘로힘은 창조자로서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가리킨다. 인간의 치유, 특히 외로움의 치유는 스스로가 창조된 존재, 즉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눈을 들어 자신과 자신을 예배하는 것에서 벗어나 시공간, 물질세계,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의 창조주 되신 엘로힘을 예배하는 것과 관계된다. 바로 이 예배 가운데, 우리의 참된 얼굴이 드러나고 거짓된 옛 얼굴들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직하고 열린 대화의 관계 가운데, 옛 거짓 자아의 껍질이 깨지면서 참된 자아가 밖으로 터져 나오는 동시에 옛 결박과 강박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각 사람의 의지는 자기만을 의식하는 성향으로 기울어져, 그를 대화로 부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즉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려 한다. 그렇게 인간은 창조자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서 벗어나 피조물인 자기 자신을 예배한다. 순전히 동성애 행위는 이처럼 근본적인 타락의 상태에 있는 인간이 취하는 뒤틀린 길 중 하나일 뿐이다. 진정, 동성애의 치유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곳에나 있는 모든 사람의 치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타락한 존재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기 전까지 우리는 정체성을 찾아 창조된 피조물들에게로 달려든다. ---「5장」중에서
예수님이 진정 임마누엘이시라는 것,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아는 것과 그분의 임재를 살고 연습하는 것은 치유와 치유의 유지를 위해 결정적이다. 이 임재의 연습은 어떤 방법이 아니라 인격이신 그분과 함께 걷는 것이며, 그 동행 가운데 언제나 치유가 있다. 또한 거기에는 성경과 우리의 경험이 가감 없이 보여주듯이, 지속적인 대화가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것은 임재 연습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귀 기울임은 기독교 치유 사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헨리 나우웬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고요 속으로 함께 들어가서 그곳에서 치유하시는 말씀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목회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경험하는 것은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나눈 것도 바로 이런 사역이다. 우리는 창조하는 힘을 가진 치유의 말씀을 듣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도록 부르심 받았다. ---「6장」중에서
타락한 자아는 자기 자신을 알 길이 없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기 전까지 우리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우리 정체성을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에서 찾으려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인간이 되어간다. 그분의 임재 안에서 그분과 대화하면서, 우리는 죄에 빠지고 신경증에 걸리고 병적 강박증에 시달리며 내면에서 초라한 역할을 하고 있는 “옛 사람”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안에 결코 뿌리내릴 수 없는 거짓 자아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진실한 존재라는 것과, 그분이 우리를 병고와 죄로부터 분리시키고 진실한 “나”를 불러내신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우리의 죄악, 신경증, 내적 결핍으로 규정하지 않으며,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며 치유의 생명을 가지신 분이 우리를 규정하시도록 한다. 우리는 타락으로 인한 수평적 자세, 즉 피조물로 기울어지는 성향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피조물로서 창조자와의 연합을 완성하기 위해 수직적으로 듣는 자세로 곧게 선다. 우리는 우리가 그분 안에 있는 것과 그분이 우리 안에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게 그분의 임재 가운데 성령이 보내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영적·심리적 치유가 일어난다.
---「6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