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금의 저 자신의 삶에 대해 주절주절 얘기함으로 저의 삶을 더 잘 살아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분명 저 자신의 혼잣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드러내놓고 얘기함으로, 누구라도 저 대신 들어올 수 있는 이러한 삶의 상태에 제가 이러한 삶의 상태에 들어와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견디어 가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 나에게 부여된 삶이 이것이라면 단지 지금의 형편을 견디고 참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멋지게 살아내자고 다짐도 하는 거예요. --- p.24
저는 지금 매우 적극적으로 환자의 역할을 하려 합니다. 마치 어떤 배우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그 배역을 최선을 다해 소화해야 하는 것처럼.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저를 진료하는 의사 선생님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환자로서의 구체적일 일상을 진술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이고, 삶이고, 또한 사명이기도 합니다. --- p.29
그런데 형, 저는 그렇게 바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지금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저에게 놓여진 이 길에서 기필코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아낼 거예요. 지금 제가 걸어가야만 하는 이 길에서, 저보다 조금 앞서 걸으시는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이 길을 피하려 한다면, 주님이 저에게 주신 길을 저버리는 것이 되겠죠. 그래서 지금 제가 살아가는 이 숨가쁜 삶은, 저에게 있어서 지극히 정상이고, 또한 건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 p.89
그래요, 산다는 것도 그 단면을 잘라보면 매일 매일의 죽음을 통하여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에 대해 ‘잔다’고 말하셨을 거예요. 결국 죽음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어떤 한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자들’의 기억입니다. 그래서 내가 깊이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것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까 하는 것입니다. --- p.214
나는 내 ‘연약함’이 참 사랑스럽고, 그 연약함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엄청난 은혜와 지혜가 담겨 있음을 알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언제나 연약함과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해짐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기회이고 창조적인 삶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연약함’은 어떤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연약함은 그 옆의 사람, 주위의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누군가의 기도 속으로 찾아가서 모든 이들을 ‘교회’라는 이름으로 연결시키고 한 몸이 되게 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임재 사건이 되는 것이죠.
--- p.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