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영원한 삶이 있다. 그것은 이 땅을 벗어난 실존이며, 이 땅의 삶에 속하는 것들을 초월한 것이다. 영원한 삶은 이 땅에서 경험한 최고의 순간들을 영원히 즐기는 것이다. 그것이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이다. 천국에서 우리는 비로소 최상의 삶을 경험하게 되며, 따라서 영원한 삶을 사후의 삶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이 땅의 삶을 사전의 삶(beforelife)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1부 5장. “천국은 지루한 곳?”에서)
우리의 몸은 무덤에 묻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확실히 믿기 바란다. 몸을 무덤에 두는 것은 금광석을 용광로에 넣는 것과 같다. 똑같은 금으로 다시 나올 것이지만, 모든 불순물은 제거될 것이다. 모든 귀중한 것은 그대로 남을 것이지만, 썩을 것, 더러운 것, 죄 된 것은 없어질 것이다.
(1부 8장.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땅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지구는 원래 모습의 희미한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새 땅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지 않는가? 저주로 인하여 빛을 잃은 현재의 지구조차 때론 너무나 아름다우며, 저주 때문에 연약해진 우리의 몸조차 이 땅의 아름다움과 경이에 압도된다면, 새 땅은 얼마나 더 장엄할 것인가?
(2부 2장. “에덴을 향한 향수병”에서)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예수님에 대해 얘기해도 충분할 텐데, 왜 천국을 그렇게 강조하는 거죠?” … 신랑과 사랑에 빠진 신부를 생각해보라. 무엇보다 신랑과 함께 있기를 원할 것이다. 만약 그가 함께 살 집을 지으러 간다면, 정말 기대에 부풀지 않을까? 그 집을 자꾸만 생각하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이뿐만 아니라, 신랑도 신부가 그러기를 바랄 것이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집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은 신랑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과 뗄 수 없는 일이다.
(2부 3장. “천국을 즐거워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며, 그분을 똑똑하게 볼 것이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을 언제나 볼 것이다. 즉, 그들에게는 주님을 보지 못하는 때가 한 순간도 없을 것이다. …… 이뿐만 아니라, 영광스럽게 변한 성도들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우상들이 다 없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더욱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다. 세상 연못으로부터 인생의 잔을 채우는 사람에게는 천국의 수정 같은 강물을 채울 공간이 없다. 하지만 천국에는 우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차지할 다른 아무 것도 없고, 주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도 없다. 주님이 그들의 영혼을 완전히 다스리시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주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롬 8:31)
(2부 10장. “예수님의 얼굴 보기”에서)
죄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당신이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천국을 사랑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위대하신 주님이 만드신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분의 손길을 깨닫지 못하다니 정말 눈 먼 자다. 그런 눈 먼 자가 새 예루살렘의 거리를 지나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영적으로만 분별할 수 있으며, 지금 당신에게는 그런 영적인 능력이 전혀 없다.
하나님과 하늘의 것에 대해 눈멀고, 귀 먹고, 죽어 있는 당신이 영적인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만약 천국이란 곳에 들어갈 수 있다 해도, 당신은 천국의 일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천국에 있으면서 천국의 상태가 되지 못하는 것은 지옥에 있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될 수 있다. 기쁨의 본질은 결국 마음과 성품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슬픈 사람에게 흥에 겨운 노래가 어울리는가? 새롭게 되지 못한 자에게 천국도 마찬가지다. 영광의 요소가 새롭게 되지 못한 자에게 천국은 복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파괴할 것이다. 하나님이 명백히 드러나신 곳보다 죄인에게 더 끔찍한 곳은 없을 것이다.
(3부 2장. “죄인은 결코 천국을 사랑할 수 없다”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시는 곳은 어마어마한 곳이다. 주님과 같은 위대한 왕은 이전에 없었다. 그곳은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시는 기쁨의 저택이며, 주님처럼 위대한 건축가는 이전에 없었다. 주님처럼 산돌을 능숙하게 다루며 돌을 쌓는 분은 없었다.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분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예비하시는 장소는 매우 훌륭한 곳임에 틀림없다. …… 사실이 이렇다면, 그곳은 우리가 원했던 천국이며, 우리가 꿈꾸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리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곳! 그곳은 하나님의 천국이며, 또한 행복한 피조물인 우리에게 꼭 알맞은 천국이 될 것이다.
(3부 4장. “그리스도께서 직접 예비하시는 곳”에서)
어떤 사람이 천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염려를 털어놓았다.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이 없어지고 다 똑같아지는 것인가요?” 그는 우리가 모두 판에 박은 듯 같아지며, 친구들도 각자의 개성과 독특성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닮은 성품을 갖게 될 것이지만 각자의 고유한 성격은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이다.
실상은, 우리만의 고유한 독특성이 천국에서 비로소 드러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진짜 감정을 갖게 될 것이며, 교만과 불안, 잘못된 생각이 모두 제거된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진짜 욕망을 지닌 진짜 사람들이면서, 거룩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좋은 것만 남고, 나쁜 것은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모습 그대로 되는 것은 정말 특권인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생각이다.
(4부 8장. “나는 천국에서 여전히 나일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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