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얼마나 뛰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무들 아래에 도착했다. 더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가 돼서야 비로소 멈춰 선 것이다. 뒤를 돌아봤다. 안쪽의 길로 그녀를 버려두고 온 기다란 가시덤불 울타리가 아직도 보였다. 내 안의 무엇인가가 그곳을 떠나길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곳, 그 가장자리에 머물렀고, 고원에서 그녀의 실루엣이 불현듯 나타나 나를 따라잡을 것만 같은 생각에 심장이 뛰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나는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숲속에 있었다. 쓰러진 나무 몸통에 발부리를 부딪쳐가며 어둠 속을 더듬었다. 바람이 불었다. 날이 더 싸늘해졌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쪽잠을 잤다. 먹지도 않았다. 내가 떠난 날짜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기에 이 다음 날부터 날짜를 세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로부터 나를 갈라놓은 시간을 가늠하고, 그녀로부터 가차 없이 멀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짜들이 계속 더해져 언젠가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질 때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 숫자들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진정시키고 둔하게 만들 것이었다. 나는 이 숫자들의 두꺼운 겹 사이로 푹 잠기고 싶었다.
--- pp.16-17
임사체험, 혹은 근사체험은 임상 죽음이나 혼수상태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착란 증상의 집합이다. 살아있는 사람들 곁으로 다시 돌아온 환자는 모두 비슷비슷한 이미지를 묘사했다. 터널이 보이고 그들의 실루엣이 좁은 관 속으로 들어가 걷는다. 그들은 이 터널 끝에서 한 줌의 빛을 발견한다. 이 최후의 이미지 안에서 그들은 실루엣의 상태로, 즉 검고 분화되지 않은 형상, 그림자로 변한다. 그들은 굴곡 없이 기다랗고, 마치 로봇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그들은 나아가 터널 끝에 있는 빛의 지점에 닿으려고 애를 쓴다. 만약 그들이 그곳에 닿는다면, 그들의 실루엣은 빛에 삼켜져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그곳에 닿지 않는다. 그들은 통로에서 머물고, 미지의 힘이 그들이 저 너머로 가는 것을 막는다. 다시 그들에게 감각이 찾아오고 안쪽의 출입구가 멀어질 때 그들은 실망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그들의 실루엣이 문을 지나 눈부신 섬광 안으로 사라졌다면, 그들은 죽었을 것이다.
--- p.22
나는 오른쪽으로 나 있는 욕실에서 잠깐 멈춘다. 바닥 타일에 타액 혹은 즙 같은 자국이 두껍고 살짝 끈적거리는, 비누가 섞인 두꺼운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선은 샤워기 꼭지 쪽을 향해 대각선으로 올라간다. 나는 냄새를 맡고 그것을 분석하는 대신, 수건으로 흔적을 닦은 뒤 곧바로 욕조에 던져 없앤다. 그러고 나서 세면대 밑에 있는 작은 선반을 열고 그 안에 든 물건들을 에나멜 처리된 매끈한 욕조 안에 쏟는다. 수건들이 색색깔의 꽃들처럼 욕조의 눈부시도록 하얀색 위에서 펼쳐진다. 이 색들이 나를 안심시킨다. 나는 내가 남긴 흔적이 침입자의 것보다 더 강하고 더 눈에 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는 마치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이 공간을 떠난다. 하지만 무질서는 점점 더 우위를 차지하는 중이다.
--- pp.68-69
인간의 손가락에 조각된 지문은 태아가 자궁 안에서의 삶 동안 겪은 다양한 자극의 결과로서, 예측 불가능한 선, 음각, 돌기로 이루어진다. 그가 그곳에서 쫓겨나 어른이 되면 그는 자기 손에 옛적의 기질이 사라지지 않은 고유한 흔적을, 그럴 기회가 있다면 범죄 현장에 남길 흔적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수사관이 될 때 배우는 것처럼, 모든 물건은 만져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돌기 혹은 지문 감정이라고 불리는 식별법은 살인자의 정체를 드러내거나 부패한 시신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과학적 관찰법 중 하나다. 이를 위해서는 흔적이 나타난 표면의 상태에 따라 형광 혹은 자기 입자, 화학 용액, 염화은을 주성분으로 한 수성 용액을 이용하며, 최근에는 진공 금속 증착법으로도 알아낼 수 있다.
--- p.87
지금 창문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바깥 풍경을 하나도 여과시키지 않은 창문에 우리가 비친다. 우리는 그 침투할 수 없는 틀 안에서 소파, 텔레비전, 그리고 파란빛이 나오는 마법의 상자 쪽을 향해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 두 개의 몸을 본다. 그때 그녀가 말한다. 나는 그녀의 망설이는 듯하면서도 깊은 목소리에 놀라고, 이처럼 파리한 몸에서 어떻게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자문한다. 그것은 목소리가 나오는 몸에서 분리된 것 같은 목소리다. 연약하고 점점 사라져가는 실루엣은 복화술사처럼 거친 목소리를 낸다. 그녀는 마치 장기이식을 한 것처럼 그녀의 것이 아닌 섬유질, 인대, 후두, 인후, 성문, 입천장, 혀, 입을 빌린 것 같다. 이것은 언니의 목소리, 친숙한 목소리가 아니고, 이것은 환경, 사건, 미지의 충격에 의해 변화된 목소리이고, 이것은 터널, 저장소, 지하의 출구에서처럼 증대된다. 텔레비전의 대화가 그것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이를 듣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녀는 비밀스럽고 억압된, 하지만 애원하는 것 같은 신호를 보낸다. 나는 텔레비전 소리를 키우고 고립된다. 목소리는 끈질기다. 목소리는 푸념 혹은 요구를 계속한다. 그녀가 빌린 몸은 무표정하고, 어떠한 숨결 혹은 입술의 움직임도 그것에 생기를 불어넣지 못한다. 이 목소리의 질감에는 지하실의 냉기가 서려 있다. 나는 관절이 꺾이는 마리오네트, 박해당한 인형들이 그들의 주인을 벌주기 위해 소생하는 호러영화를 생각한다. 나는 동정에 무심하다. 나는 웃고 싶다.
--- p.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