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은 많은 스님·선지식과 불교학자에 의해 한자와 한글로 번역되고 이를 해설한 책은 수백 종이 넘습니다만, 시골 촌부인 자연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견해를 밝힌 책은 만나보질 못했습니다. (……) 금강석보다도 더 견고한 마음으로, 결코 상(相)을 내지 않는 무아의 경지를 밝히는 일이 알량한 저의 역량으로는 버거운 작업일 수밖에 없을 테지만, 무명시인인 시골 촌부가 느낀 금강경의 울림은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관찰하시는 것도 독자 여러분의 새로운 불연(佛緣)에 의한 환희심이 되리란 소망을 가져봅니다.
반야심경이 중생을 차안에서 피안으로 태우고 가는 반야용선의 항로와 항해술을 밝힌 경전이라면, 금강경은 어떠한 풍파와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반야용선 그 자체를 건조하는 조선술에 해당하는 경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으로 인연한 여러분과 저의 만남 자체가 인생이라는 항로를 같이 헤쳐나가야 하는 법우가 되어, 니르바나의 꽃향기 백억만 나유타 겁에 퍼지는 시공 인연의 시작이 되기를 삼보 전 합장하면서, 지금부터 금강석 같은 견고한 금강경의 진리의 바다를 향해 출항의 고동을 울립니다.
--- 머리말 중에서
금강이란 한마디로 다이아몬드를 뜻합니다. 그리스어로 ‘정복할 수 없다’는 뜻의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된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와 탄소 원자가 끝없이 만나 단일 원자 결합으로만 물질이 이루어진,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체이면서, 찬연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고 보면 금강경이 상징하는 신묘막측한 사유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음을 짐작게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강한 것으로도 자를 수 없고, 무엇보다도 찬연히 빛나는 절대적 진리, 그 진리의 핵심이 금강경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과 수보리존자의 선지식 그리고 5세기 초에 이 경전의 원문을 한역(漢譯)한 쿠차국 출신의 선도승 구마라집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비교 불가인 절대 진리의 결정체 금강경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p.16~17
뉴턴은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긴다는 생각에 앞서, 사과도 지구를 끌어당긴다는 생각으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연유한다는 금강경으로의 발상적 전환에 그 맥이 닿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행위와 법칙은 보이지 않는 중력이 좌우하는 질서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 그러니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과 같고, 보이는 것 또한 보이지 않는 것이니 이 둘을 하나로 볼 수 있다면 곧 여래(진리)를 볼 수 있다는 우주의 솔성(率性)을 진즉에 밝히신 겁니다.
뉴턴이 금강경을 접했을 리는 만무할 것이나, 사고의 통시성(通時性)은 수천 년을 건너와 이렇듯 선지식으로부터 후학에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는 것도 우리가 금강경을 공부하는 또 다른 환희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금강경을 읽고 사경하며 염송하면서도, 이처럼 인간 본연에 내재된 위대한 불성을 깨달아 극락도, 지옥도 없는 현생의 참자아를 참구하여, 견고한 진리의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가는 금강경의 사상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 p.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