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에서 추신은 사실 없어도 좋은 부분이다. 본문에 전해야 할 이야기를 다 썼다면 굳이 추신을 쓸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종종 추신을 덧붙인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추신을 쓰기도 한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고 싶으나 차마 하지 못하는 속마음이 담긴 문장은 본문이 아니라 추신에 쓰인다. (중략) 그리고 거기에 나 자신의 이야기를 추신처럼 덧붙인다. 굳이 없어도 되는 이야기지만 이 추신을 통해 내가 보내는 편지가 더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친애하는 독자의 마음에 이 편지가 더 착 달라붙기를 바란다. 동시에 이 이야기들은 내 인생의 수많은 S 씨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추신일 수도 있다. 나라는 인간이 갇혀 있던 좁은 틀을 넘어 더 넓고 더 깊은 세계에 발을 디딜 용기를 선물한 이들에게 보내는 추신.
--- 「프롤로그, 추신을 덧붙이는 마음」중에서
나에게 글쓰기는 산책과도 같다. 버스 노선과 집과 직장과 술집을 오가는 패터슨 씨의 산책길처럼. 나는 그 길을 나의 리듬과 속도로 걷는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이 길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무엇을 마주치게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게다가 나에게는 언제나 선택권이 있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할 선택권이. 어찌 됐든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니까.
--- 「1장 중력이 있는 곳, 바베트가 말한 것」중에서
나, 나쁘지 않아. 누가 뭐라고 해도 그곳에서 도망가는 내가 맞는 거야. 그 사람을 싫어하는 나도 틀리지 않아. 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거지. 그래도 되는 거지, 나.
--- 「마스다 미리, 『아무래도 싫은 사람』」 중에서
몇 년 전 누군가를 심하게 미워했었다. 지금은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자다가 깨어나 위가 쪼그라드는 아픔에 몸부림을 칠 정도로 심각한 미움의 덫이었다. 만약 내가 그 덫에 여전히 갇혀 있었더라면 나는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미움의 한가운데서 미움을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
--- 「1장 중력이 있는 곳, 어쩐지 미운 사람」중에서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학교를 모두 졸업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고, 직장에 들어갔고, 그 모든 전화를 걸어냈다는 사실을.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아서 길렀다는 것을. 심지어 나에게는 내 인생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내가 이 세상의 부적응자가 아니라는 표식이 되어주는 가족과 친구들과 동료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 이제 나는 그 여자애를 다독일 줄 알게 되었다.
‘알아, 나도. 내가 무섭다는 걸. 하지만 지난번에도 해냈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할 수 있어. 처음엔 당황하고 무섭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늘 그랬던 것처럼.’
--- 「3장 어른을 위한 용기, 나는 두려움을 마신다」중에서
어른의 나이에도 어른인 척만 하지 진짜로 어른은 못된 나는 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인생은 거대한 파도처럼 덮쳐온다. 어른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사랑한 모든 책과 영화들이, 그 이야기들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일종의 용기였다고 생각한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 이 어려운 인생을 헤쳐나갈 용기.
--- 「에필로그, 이야기를 듣는 마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