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은 어제와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가정 하에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현재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고, 현재와 미래의 흐름이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왔던 방식과 현격히 다르다면 어쩌겠습니까? 제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고 냉철한 지성으로 무장하더라도 쓸모없지 않겠습니까? 1, 1, 1, 1…, 아니면 고작해야 1, 2, 3, 4…일 줄 알았는데, 만일 1, 2, 4, 8, 그리고 10, 100, 1000, 1만으로 배가되고 증폭된다면 어떻게 판단하고 예측해야 할까요? 그래서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불연속성이 그간 공고했던 우리의 인식과 세상의 상식을 내팽개쳐버린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정녕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거세게 달리던 부·권력·지식의 삼두마차가 일견 멈춘 듯 격변의 혼란을 보여주더니, 이제는 반대방향으로 바퀴가 굴러갑니다. 우리가 굳건하게 믿었던 목적지가 아닌 전혀 다른 신세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지금까지 없던 세상으로요. 그렇게 된 계기에는 종말이 있어서입니다. 3가지의 종말이었죠. 부의 세계에는 ‘평균의 종말’이, 권력의 세계에는 ‘책임이 종말’이, 그리고 지식의 세계에서는 ‘정답의 종말’이었습니다.
- 221p, 평균의 종말, 책임의 종말, 정답의 종말
인간은 200만 년이나 수렵과 채취로 연명했습니다. 그러다가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며 1만 년의 ‘농업의 시대’를 지내왔고, 기계화와 함께 ‘산업의 시대’에서 또 200년을 보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산업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산업의 시대에서 태어났고, 자랐고, 배웠고, 일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독창적이고 창의적이고 때론 혁신적이라 해도,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남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0년간 쌓였던 고정관념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지금.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나요? 인류가 살아온 유구한 역사에서 우리가 처한 이 시점은 어느 지점인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산업의 시대의 끝자락, 아니면 무언가 새로운 시대의 앞자락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보화 시대이든지 초연결 시대이든지, 후대의 역사가들이 무어라고 명명하겠지요. 인류가 201만 년을 살면서 그리고 200년의 산업시대를 지나오면서, 하필이면 우리는 지금 변곡의 시기에 도착했습니다.
-32p, 당신이 믿고 있는, 믿지 않아야 할 이야기들
‘물리物理’라는 것은 모든 사물의 이치이고 ‘역학力學’은 물질이 움직이는 원리이니, 이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에 관한 상식이자 믿음입니다. 그런데 뉴턴의 고전물리학에서부터 이를 확장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를 비웃으며 등장한 새로운 물리학, 전혀 새로운 역학이론이 있습니다. 물질의 입자가 연속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마치 귀신처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행태가 가능하다는 이론입니다. 이름 하여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 우리의 그간의 상식, 신념, 학식을 송두리째 흔드는, 아직도 우리가 진정으로 이 세상과 사물을 다 알지 못한다고 충고하는 물리학 아닌 물리학입니다.
양자역학은 세상의 흐름의 연속성을 반대하는 개념입니다. 양자라는 단어도 ‘덩어리’를 뜻하는 독일어 ‘퀀텀quantum’을 번역한 것으로 ‘불연속적인 덩어리의 흐름’이라는 뜻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덩어리역학’이 더 맞는 용어겠네요. 아무튼 양자역학은 현대물리학의 중추가 됩니다. 이 이해조차, 설명조차 어려운 학문으로 현대과학기술이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반도체의 원리, 레이저의 작동, DNA의 구조와 기능, 빛의 색깔… 등을 모두 양자역학으로만 해명할 수 있으니, 전자공학의 기초이자 컴퓨터발전의 최고 공신인 셈이죠.
- 54p, 아름답지만 충격적인
부자에는 3가지 레벨이 있습니다. 고수, 중수, 하수, 이렇게 3가지 등급이 있다는 겁니다. 하수는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부를 축적합니다. 부지런히 모으고 알뜰히 아끼면서요. 대다수의 우리는 이렇습니다. 부자는 아닐지언정 이런 식으로 부자가 되려고 애쓰죠.
중수의 부자는 하수를 비웃습니다. “돈은 그렇게 버는 게 아냐.” 하면서. 혼자 열심히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남이 자기의 돈을 벌어줍니다. 물론 혼자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벌겠지요. 그러나 고수의 부자는 중수와 하수를 비웃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이지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고수는 변덕스러운 사람보다는 돈을 믿습니다. 돈이 일해 돈을 벌게 하는 게 현명하다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자인가요? 아니, 어떤 부자를 지향하나요? 안정적인 직업으로 각광받는 교사, 공무원의 월급으로 10억 원을 벌려면 평균 20년이 걸립니다. 버는 것과 모으는 것은 다르니, 월급의 10%를 저축하여 실제로 10억 원을 손에 쥐려면 단순 계산으로 200년입니다. 200년,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200년이나 일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그것도 열심히, 열심히요. 결국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른 문제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부자들이 위선이나 행하면서 자신들이 오른 위치에 범접하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찬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시샘 섞인 순진한 발상일 뿐입니다. 부자들이 살고 있는 초고층 아파트나 그들이 소유한 고층빌딩을 밑에서 올려다보며 사다리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눈에나 보이는 사다리입니다. 부자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거든요.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93p 어떻게 부의 도약을 이룰 것인가?
권력자에도 3가지 등급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중수의 권력자부터 얘기하겠습니다. 일반적인 권력자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유형으로, 권력도 있고 그에 따르는 책임도 있습니다. 하수는 다릅니다. 권력자라고 부르기도 뭣한 권력자이죠. 책임만 있습니다. 책임질 일이 있는 걸 보니 과거에는 합당한 권력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희미해진 권력의 추억을 안고 책임만 짊어지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적지 않습니다. 어쩌면 저나 여러분일 수도 있고요.
고수의 권력자는 ‘책임 없는 권력’을 행사합니다. 얄미워 보일 수 있는 이 권력자는 진정한 고수입니다. 권력을 휘두르되 상응하는 책임은 남의 몫입니다. 예로부터 진정한 권력자는 책임이 없었습니다. 왕의 실정은 신하가 책임지고, 양반의 실수는 천민이 책임집니다. 신이 강림하지 않았다면 신을 믿지 않은 인간 탓입니다. 현대 기업과 조직에서도 최고 의사결정자의 웬만한 잘못은 책잡히지 않는 법이죠.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남으로써 권력자는 고수의 훈장을 달게 됩니다. 빛나는 훈장으로 후광이 찬연한 그들에게 우리는 책임 운운할 생각마저 잊어버립니다.
- 141p, 어떻게 권력의 도약을 이룰 것인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