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잠정적인 결론은 지금의 결혼은 '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라는 점이다. 결혼처럼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는 제도도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최상의 가치로 내세웠고, 실제로 사회 구성원이 충분히 혼자 사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동시에 이사회는 도시라는 거대한 익명의 공간 속에 개개인을 고립시킴으로써 불안과 외로움에 떨게 하였고, 그래서 누군가를 영원히 붙들어 두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켜 왔다. 끊임없는 이동을 강요하는, 여행자로서의 삶이 어울리는 조건 속에서 영원한 집을 꿈꾸게 하는 것, 또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부추기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근원적 모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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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임에서 독신으로 사는 즐거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한 주일씩 설거지를 쌓아 놓을 수도 있다든가, 방바닥이 안 보일 때까지 물건을 흩어 놓을 수 있다든가, 치약을 아무렇게나 짜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든가 하는 예들이 나왔다. 나는 그것은 약간 지저분한 사람이 간섭에서 벗어나 멋대로 지저분하게 사는 즐거움일 뿐 독신 생활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타인의 간섭이 없다는 건 사소하게 보이지만 엄청나게 개인의 일상을 바꾸는 것이며, 먹고 싶을 때 원하는 대로 먹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자고 싶을 때 잔다는 시간 사용의 융통성을 누리는 건 대단한 특권이다.
나도 그들이 든 예외와는 좀 다른 종류의 소극적인 자유, 즉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돈된 집 안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들어앉아 있는 것을 독신 생활의 좋은 점으로 가장 먼저 떠올렸으나, 그보다는 좀더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와 깊이 있는 내면 생활ㅇ르 가능하게 하는 기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p.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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