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무언가 달라졌다. 와인은 인기 좋은 소비품으로, 또 진정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변모했다.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더 좋은 와인을 만든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와인을 잘 만드는 나라 안에서도 어떤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더 나은 와인을 만들었고, 그 지역 안에서도 어떤 생산자는 다른 생산자보다 뛰어난 와인을 만들었다. 같은 생산자가 만든 와인들 가운데서도 특히 돋보이는 와인이 있었다.
눈여겨 볼만한 와인들이 그렇지 않은 와인만큼이나 많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자 와인은 단순한 음료를 벗어나 훨씬 더 복잡한 문화를 이루게 되었다. 내가 와인에 관해 알아 가면 갈수록, 내가 얼마나 와인에 대해 모르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좋은 충고와 훌륭한 조언, 그리고 진짜 진주처럼 반짝이는 지혜를 끝없이 만날 수 있었다. 이 모두가 와인으로부터 더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실용적인 정보들이었다. 이 책에서 다룰 내용이 바로 이런 지혜와 지식들이다. 많은 돈,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와인에 정통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정에 비례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와인이란 약간의 관심이 큰 차이를 만드는 놀라운 음료다. --- p.8

동네에 있는 와인숍들은 정겹다. 그리고 와인과 인생이 뭔지 아는 주인장이 반갑게 손님을 반긴다. “우리 애가 반에서 1등을 했어요”라는 수다가 샴페인 한 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직장 상사 욕을 하다가 상쾌한 쇼비뇽 블랑 한 병을 담을 수도 있다. 그런 곳이다.
와인숍의 단골이 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전문 와인숍의 가장 큰 장점은 대규모 상점에선 찾기 힘든 와인들을 마치 보물찾기 하듯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와인의 가짓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명성이 높지만 오직 소량만을 생산하는 슈퍼-프리미엄급 명품 와인들과 더불어, 독특하면서도 장인정신이 묻어나는 소규모 생산자들의 와인도 구할 수 있다. 만약 가게에 없는 와인을 원하더라도 주인장은 모든 경로를 동원해 그 와인을 구해줄 것이다. 와인을 진열하는 방법은 주인장 마음대로지만 대부분은 품종이나 생산 지역에 따라 분류한다. --- p.22

와인잔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일은 휴대용 흑백 TV를 42인치짜리 디지털 벽걸이 HDTV로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그 차이에 깜짝 놀랄 것이다. 코르크스크루와 마찬가지로 와인잔의 모양이나 형태도 제각각이며, 그 가격도 싸구려부터 심한 과소비라 할 만한 것까지 다양하다. 와인잔의 종류는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잘 세분화되어 있다. 일단 풀-바디의 레드와인 잔, 가벼운 레드 잔, 화이트 잔, 샴페인 잔 등 종류별로 구분한다. 또, 보르도 잔, 부르고뉴 잔, 키안티 잔 등 생산지별로도 나눈다. 카베르네 잔, 샤르도네 잔 등 포도의 품종에 따라서도 분류한다.
나는 집에서 세 가지 잔을 쓴다. △샴페인 플루트(*볼의 모양이 수직으로 곧게 뻗은 잔) △어느 와인이든 마실 수 있는 다용도 잔 △무거운 느낌의 레드와인에 쓰는 좀 더 큰 잔이다. 이 세 종류면 충분하다. 와인잔 구입에 많은 돈을 쓸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와인잔을 사기 위해 기억해 둘 몇 가지 점이 있다. --- p.65

아시아에선 서로 정반대되는 향미와 질감을 한 요리에 같이 쓰곤 한다. 아시아 요리는 보통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이라는 네 가지 맛의 축을 중심으로 한다. 이처럼 한꺼번에 둘, 셋씩 덤비는 자극적인 맛을 감당할 수 있는 와인이란 흔치 않다.
아시아 요리에는 독일 와인이 잘 어울린다. 알코올과 오크향이 강한 와인이라면 아시아 음식들과 잘 맞지 않는다. 알코올과 오크는 음식의 섬세한 향미를 짓밟는다. 타닌이 많은 와인 역시도 음식의 미묘한 질감과 균형을 이루어야 할 때 문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신선한 고추가 곁들여진 요리에 산도는 높지만 당도가 낮은 와인을 마시면 안 그래도 자극적인 음식을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맵게 만들 수도 있다. --- p.114

1916년, 스웨덴의 범선 왼쾨핑Jonkoping호는 예블레 항을 떠나 핀란드로 향했다. 배에는 제정 러시아 장교들에게 안겨줄 에이드직Heidsieck사의 샴페인 ‘구타메리캔’Gout Americain (1907년 빈티지!) 4,400병이 실려 있었다. 거의 목적지에 다다랐을 무렵 독일 잠수함 U22가 배의 길을 가로막았고, 다이너마이트 공격으로 범선의 선원 전원이 몰살당했다. 배의 잔해는 그 안에 실려 있던 모든 것과 함께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거의 80년이 지나 초음파 장비의 도움으로 두 다이버가 왼쾨핑호의 위치를 찾아냈다. 탐색이 시작되었다. 두 다이버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난파선의 잔해 사이에서 수많은 샴페인 병들이 보였던 것이다. 기적적으로 병과 코르크마개 모두가 압력을 견뎌냈다. 캄캄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닷물은 와인의 숙성을 거의 정지시켰는데, 병 안의 내용물이 잘 보존되었다는 얘기다. 두 다이버는 재빨리 왼쾨핑호의 발굴권을 따냈고 바닷속 노다지를 끌어올렸다. 보물들의 가치는 2,000~7,000만 달러로 추산됐다.

와인, 잘 사고 잘 고르고 잘 마시는 방법<br/>그리고 와인과 함께 즐거운 인생을 사는 법<br/><br/>국내 최초의 라이프스타일 와인북<br/>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와인은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고, 오래된 것을 새롭게 하고, 싱싱한 영감을 주며, 일의 피곤함을 잊게 한다”고 했다. 와인은 여행이나 연애처럼 평범한 일상에 다소의 특별함을 더해주는 아름다운 음료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와인은 즐거움이 아니다. 공부해야 할 대상, 혹은 이해하기 힘든 전문 분야이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와인 엄숙주의’ 때문이다.<br/>이 책 『와인 스타일북』은 국내 최초의 ‘라이프스타일 와인북’을 표방한다. 말 그대로 와인을 공부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와인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서 자연스럽게 즐기는 방법을 다룬다. ‘와인 스타일북’이라는 책 제목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의 와인책과는 전혀 다른 콘셉트와 접근 방법으로, 일상의 즐거운 한 부분으로서의 와인과 친해지는 방법을 속속들이 알려준다.<br/>저자 매트 스키너는 천재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의 와인마스터이다. 그의 전작 『캐주얼 와인북』(세종서적?2008년)은 와인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게 하는 와인 입문자들의 ‘교양필수’ 같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일상에서 멀어진 와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와인의 즐거움이란 와인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와인에 곁들인 음식과 그때의 분위기, 공기, 함께한 사람들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총체적인 경험”이라고 지적한다.(114쪽) 그렇다면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와인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br/><br/>감자튀김과 생선초밥엔 어떤 와인이 어울릴까?<br/>이 책은 다양한 포도 품종이나 와인의 종류, 레이블 읽는 법, 양조 방법 등을 시시콜콜 열거하지 않는다. 알면 좋지만 몰라도 그만이라는 식이다. 그 대신,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만드는 방법에 관해서는 책 전체 분량의 약 4분의 1을 할애해 철저하게 파고든다. 음식과 와인의 결합은 식탁 위의 종합 예술이라는 것.<br/>예를 들어, 부르고뉴 와인 등 피노 누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오리고기에 그만이다. 연어나 참치와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고등어라면 향미가 짙고 풍부한 오크 숙성 화이트와인이 좋다. 샤르도네 품종이 제격일 것이다. 돼지고기에는 레드와인이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매트 스키너는 “새끼돼지 통구이에는 이탈리아산 산지오베제 와인이고, 중국식 삼겹살 구이에는 스파클링 쉬라즈”라고 꼭 집어 알려준다. 심지어 영국의 길거리음식인 피쉬&칩스에는 고급 샴페인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한다.(106~129쪽)<br/>이러한 것들은 음식과 와인의 매칭을 만드는 일반적 ‘공식’이다. 기억해두면 유용하다. 하지만 모든 예술이 그렇듯 ‘식탁 위의 예술’에 있어서도 개개인의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테이블 아티스트’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원칙만 알면 되는데, 바로 음식과 와인의 균형과 질감에 대한 고려이다.(특히 96~105쪽 참고)<br/>매트 스키너는 “음식과 와인의 완벽한 조화는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와 소믈리에만이 만들 수 있는 마법이 아니라 여러분의 부엌, 식탁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현실적인 사건”이라며 “잘 고른 와인 한 병은 평범한 음식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독자들을 독려한다.(106쪽)<br/><br/>오늘 퇴근길에는 동네 와인숍에 들러봅니다<br/>직장생활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푸는 사람들이 많지만 유독 와인 쇼핑에는 자신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만 알면 와인 쇼핑은 금세 일상의 즐거움으로 탈바꿈한다.<br/>슈퍼마켓의 와인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 따라서 준비가 필요하다. 대형 와인전문점이라면 매장 직원들과 친해져야 한다. 훌륭한 동네 와인숍은 마치 보물상자의 열쇠와 같은데, 주인장의 안목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경매장에서 때때로 횡제를 건질 수도 있다. 드라이브를 겸한 와이너리 직판장 방문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해졌다.(17~31쪽)<br/>저자인 매트 스키너는 보르도 좌안?우안, 부르고뉴 같은 복잡한 와인 산지를 개괄하는 대신에 안전한 먹거리와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유기농 와인과 생명농법 와인, 공정무역 와인, 탄소중립 와인 등을 살펴본다.(52~55쪽) 유기농 와인과 생명농법 와인은 어떻게 다를까? 커피와 마찬가지로 와인에 있어서도 공정무역이 필요하다.<br/>와인 업계 내부자인 그는 와인 가격의 비밀도 공개한다. 소매가 2만 원짜리 와인은 1만 5,000원짜리 와인보다 품질이 두 배 이상 좋을 수 있다!(46~47쪽)<br/><br/>한 잔의 샤르도네 와인은 일요일 오후의 행복<br/>우리는 보통 음식물을 목으로 넘기기 전에 아홉 번쯤 씹는다고 한다. 한 번 씹는데 1초씩 총 9초면 음식의 맛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와인은 어떤가? 순식간에 목룀로 넘겨버리고 만다. 와인 한 병을 만드는 데는 2~3년이 걸린다.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들여 진가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br/>이를 위해서는 일단 와인 도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잔이다. 저자는 “와인잔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일은 휴대용 흑백TV를 42인치 디지털 벽걸이 HDTV로 바꾸는 것과 같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단언한다.(65쪽) 하지만 ‘좋은 잔’이 꼭 ‘비싼 잔’일 필요는 없다.<br/>와인잔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와인의 온도다. 와인이 너무 차가우면 매혹적인 향과 맛이 억눌려 다 피어나지 못하며, 질감도 변할 수 있다. 반대로 온도가 너무 높은 와인은 알코올 기운이 불거지며 균형감이 깨진다. 매트 스키너는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와인을 너무 차갑게 해서 마신다”고 지적한다.(69쪽) 매트 스키너의 조언을 모두 숙지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시원한 샤르도네 와인 한 잔으로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 일이다.<br/><br/>5년 뒤에 마시기 위해 와인을 사본 적 있습니까?<br/>와인은 건전한 취미가 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와인의 음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와인 모으기 역시 모형 수집이나 음반 수집만큼 좋은 취미이며, 나아가 훌륭한 투자가 되기도 한다.<br/>와인은 다른 술과는 달리 ‘시음 적기’라는 것이 있다.(139~149쪽) 아무리 비싼 와인도 이 시음적기를 맞추지 못하면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 보통의 고급 레드와인은 해당 빈티지로부터 5~15년 후가 시음적기인데, 이 기간은 크게 유동적이며 또한 상대적이다.<br/>하지만 이 때문에 와인 수집이 재미있어 진다. 시음적기를 추측하며 5년 뒤의 결혼기념일, 10년 뒤의 딸 아이 결혼식에 딸 와인을 모아가는 것이다. 매트 스키너의 말대로 “와인은 시간의 흐름을 함께하는 일종의 타임캡슐”이며 “한 병 한 병의 와인이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추억의 스냅­샷이 된다.”(160쪽)<br/>이처럼 와인을 장기간 보관하다 보면 보통은 가격이 오르는데, 이것이 재테크의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159~165쪽) 와인 투자는 미술품 구입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일단 좋은 ‘작품’을 구별해 낼 수 있는 감식안이 필요하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며 올바른 보관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사기는 쉽지만 팔기는 어렵다. 판다고 해도 정해진 가격이 없다. 그럼에도 와인 투자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반은 투자이고 반은 취미이기 때문이다. 구입한 고급 와인이 5년 뒤에 가격이 두 배로 오른다면 팔아서 차익을 챙기면 되지만, 만약에 오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좋은 날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마시면 그만이기 때문이다.(159쪽) <br/><br/>몸에 좋은 와인 vs. 와인도 술일뿐<br/>심장 질환 예방 등 건강상의 이유로 와인을 챙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반면, 와인도 술이기 때문에 건강에 해롭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건강과 관련한 문제에서 와인은 마치 두 얼굴의 야누스와 같다. 그렇다면 올바른 정보와 적절한 음용이 해답일 것이다. △프렌치 패러독스(173쪽) △와인 첨가물 △와인과 알레르기 △와인과 심장 질환 △와인과 당뇨병 △와인과 임신 △와인과 치아 △몸에 좋은 폴리페놀 화합물 △두통과 숙취 등에 관해 상세히 알아본다.(166~173쪽)<br/><br/>기분 좋은 와인 사진집 같은 책<br/>한편, 『와인 스타일북』은 와인을 주제로 한 사진 작품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책 전체가 훌륭한 사진으로 가득하다. 와인과 관련한 다양한 장면과 표정들을 잘 잡아냈다는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위해 200여 장의 사진을 찍은 크리스 테리는 「타임스」 「선데이타임스」 「엘르」 등의 잡지에 사진을 싣는 사진작가이다. 특히 와인에서 피어나는 모든 향과 아로마를 사진으로 잡아낸 88~91쪽은 와인 테이스팅의 재미를 두 배로 만든다. 제이미 올리버도 이 책에 대해 “기분이 좋아지는 와인책 한 권”이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