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책
이 책은 교과서가 아닙니다. 현대 광고의 아버지 오길비(David Ogilvy) 선생 말씀도 아닙니다. 내 성공과 실패를 내 마음대로 오리고 붙인 카피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나는 이렇게 썼는데 너는 어떻게 쓸래? 묻는 카피 연습장에 가깝습니다. 동의하기 어려운 외로운 주장도 있을 것이고 시대에 뒤진 생각도 있을 것입니다. 비약과 무리와 과장과 무지와 억지도 있을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카피책을 기대하셨다면 읽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정철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머리를 굴리는지, 어떻게 카피를 쓰는지, 그의 머릿속과 연필 끝을 훔쳐보고 싶은 사람은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나는 카피라이터가 될 건 아닌데 이 책 읽을 필요가 있을까? 묻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카피든 에세이든 연애편지든 사람 마음을 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모든 글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카피라이터가 아닌 사람은 짧은 글로 사람 마음을 얻는 방법이라는 관점 하나만 붙들고 읽어주시면 됩니다. ---「PROLOGUE _ 책 한 권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중에서
잘생겼다 → 장동건 동생일 거야
예쁘다 → 김태희 스무 살 때
많다 → 삼십육만 칠천팔백 개
꼼꼼하다 → 손톱 열 개 깎는 데 꼬박 20분을 투자한다
이렇게 쓰십시오. 이렇게 구체적으로 쓰십시오. 막연한 카피, 추상적인 카피, 관념적인 카피와 멀어지려고 애쓰십시오. 구체적인 카피는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줍니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는 건 카피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찰칵 찍어 배달해준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더 생생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카피에 힘이 붙겠지요. ---「1 _ 카피작법 제1조 1항」중에서
before 행정, 도민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농업, 전문가와 경쟁력을 키웁니다
교육,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꿈꿉니다
경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듭니다
복지, 삶의 질을 한 뼘 더 높입니다
문화, 우리 역사의 흔적을 찾습니다
생활, 세종시를 반드시 건설해냅니다
환경, 지구가 준 선물을 지킵니다
나름대로 짤막하게 잘 정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역시 맛이 조금 섭섭합니다. 찌개에 돼지고기와 소고기, 닭고기 등 재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 담백한 맛이 나지 않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번엔 첨가가 아니라 덜어 냅니다.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입니다. 돼지고기든 닭고기든 건져 내고 맛을 다시 봅시다.
after 행정, 듣습니다
농업, 키웁니다
교육, 꿈꿉니다
경제, 만듭니다
복지, 높입니다
문화, 찾습니다
생활, 해냅니다
환경, 지킵니다
맛이 담백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때로는 생략이 맛을 살립니다. 때로는 생략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메시지에 집착하지 말고 과감하게 생략하여 리듬과 흐름을 만드는 작업. 솜씨 좋은 주방장은 이런 음식도 잘 만듭니다. 메시지 전달이 허전하다 싶으면 서브헤드라는 보조 요리를 곁들여 보충 설명을 해주면 됩니다. 서브헤드 이야기는 잠시 후 나누기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빼기였습니다. ---「5 _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중에서
공짜, 무료, 덤, 할인, 특가, 세일, 1+1, 당첨, 돈, 재산, 이익, 부자, 횡재
이런 말들은 소비자 귀를 솔깃하게 만듭니다. 돈을 벌어줄 것 같은 냄새를 진하게 풍기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알리십시오. 세일 광고 헤드라인은 당연히 [70% 세일]이어야 하고, 이 멋없는 카피가 눈에 가장 잘 띄어야 합니다. 기억해두십시오. 소비자가 가장 열광하는 건 사랑도 우정도 애국도 애족도 애향도 아닌 내 이익입니다. ---「22 _ 부자 되세요!」중에서
내 이야기만으로 비교 우위를 알리기 어려울 땐 상대를 끌어들이십시오. 적의 입으로 나를 이야기하십시오. 라이벌을 공격하는 광고, 라이벌을 공격함으로써 내가 돋보이는 광고를 광고주가 싫어할 리 없습니다.
copy 한 개는 한계가 있습니다
바디 하나에 에어컨 두 개 달린 LG 휘센 듀얼 에어컨의 또 다른 카피입니다. 에어컨 하나 달린 삼성을 저격하는 카피입니다. 두 제품을 소비자 앞에 나란히 세워놓고 “누가 하나 달렸고 누가 둘 달렸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세요”라고 말하는 카피입니다. 물론 이런 광고는 공인된 데이터를 밝히는 비교광고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처럼 경쟁자를 머릿속에 넣고 카피를 쓰면, 나 혼자 잘났다고 떠드는 카피보다 더 적극적인 카피가 태어납니다. ---「24 _ 라이벌 사용법」중에서
카피는 카피라이터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광고 속에만 놓여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꼭 상품을 팔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상을 유쾌하게 만드는 카피,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카피, 세상 온도를 한 뼘 더 올리는 카피,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당신도 쓸 수 있습니다.
---「EPILOGUE _ 카피라이터 명함이 없는 당신에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