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문득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 토실토실 말랑말랑, 그 어떤 거친 바닥에서도 뼈와 장기를 폭신폭신하게 받쳐주는 엉덩이. 심한 말, 못된 말, 독한 말을 들은 하루. 몽실몽실 내 마음을 감싸, 그 어떤 명사와 동사도 경동맥을 찌르지 못하게 지켜주는 그런 마음의 엉덩이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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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걸 보면 왜 아파트나 빌딩이나 지구를 부수고 싶어질까? 그건 귀여운 공격성이라고 불리는 심리 때문인데 증명하는 실험도 있어. 사람들 손에 뽁뽁이를 쥐여주고 귀여운 동물 사진과 안 귀여운 동물 사진을 보여줬더니 귀여울 때 뽁뽁이를 더 많이 터트렸다는 거야. 너무 행복하면 뇌가 균형을 맞추려고 반대 감정을 만들기 때문이라네? 그러니까 누가 나에게 쓸데없이 공격적이거나 부정적으로 굴면 내가 너무 귀여워서 그렇다고 생각하자. 귀여운 것도 참 피곤행. 똑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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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붙어 있을까? 지하철 환승 통로나 플랫폼 근처, 벽 한 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거울 말이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어쩌면 고도로 계산된 보행자용 안전장치일지도 몰라. 거울 앞을 지날 땐 거기 비친 자기 모습을 보느라고 걸음이 느려지니까. 그렇게라도 좀 천천히 가라는 의도 아닐까?
출근길 반쯤 잠든 채 걷는 직장인도, 인파에 눌려 구겨진 가방을 두드려 펴는 학생도, 곱게 파마를 한 어르신도, 거울 앞을 지날 때면 습관적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 봐. 그러다 같이 거울을 보고 있던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재빨리 몸을 돌리고 가던 방향으로 총총 사라져. 그 머쓱해하는 뒷모습이 꼭 점프에 실패한 고양이처럼 사랑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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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으면서 복숭아를 좋아하는 건 너무 곤란해. 복숭아를 씻을 때마다 긴 팔로 갈아입고 고무장갑을 끼고 마스크로 코와 입을 막은 채 싱크대 앞에 서야 한단 말이야. 개털 알레르기가 있으면서 개를 좋아하는 것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야. 개 키우는 친구 집에 갔다 온 저녁에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 밤새 몸을 긁어야 하지. 위장이 약하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것도 정말 불편해. 가끔 두 잔 이상 마신 날에는 아린 속을 부여잡고 도쿄에서 사온 양배추약을 입에 털어 넣곤 해. 힘들면 안 먹고 안 만지면 되는데. 어쩔 수 없어, 좋아서.
괴로울 게 뻔한데도 좋아하는 것은 습관인가 봐. 그렇게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도 당신이 좋아. 정말 어쩔 수 없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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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이야기가 좋아. 요즘엔 모든 갈등이 열 페이지 만에 풀려버리는 로맨스 소설이나 무조건 해피엔딩인 코미디 영화만 보고 있어. 상처로 가득한 다른 사람의 삶 같은 거 보고 싶지 않은 걸. 그건 스스로로 충분해. 맞아 나는, 행복하지 않은 행복중독자. 자신만으로 가득 차서 타인의 아픔을 품지 못하는, 나라는 작고 편협한 행성의 유일한 주민.
우리가 이토록 쓸쓸한 이유는 서로의 행성이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겠지. 자아라는 대기층에 꽁꽁 쌓여 홀로 자전하는 외로운 중력의 덩어리들. 이 고독한 질주를 견디게 하는 단 하나의 위로는, 아주 멀리서 보면 우리가 하나의 은하수라는 사실.
행복한 이야기가 좋아. 상처로 가득한 다른 사람의 삶 같은 거 보고 싶지 않아. 나는 이렇게 오래도록 닫혀 있을 것이고, 슬프지만 아마 쉽게 변하지 않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은하에 머물러주는 너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싶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우리의 은하에 공기가 없어서 이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아주 큰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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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기준 통화는 치킨코인이다.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후라이드치킨 가격인 만 15,000원이 1치킨코인에 해당한다. 집에서 회사까지 택시 탈 때 약 0.8치킨코인. 덕질하는 연예인이 방송에 입고 나온 후드티 약 2.5치킨코인. 을지로의 힙한 카페 커피값 약 0.4치킨코인. 그리고 책값이 약 1치킨코인 전후.
당신이 이 책을 위해 지불한 1치킨코인을 생각한다. 무려 치킨 한 마리를 먹을 수 있는 돈을 지불하고 이 책을 고른 것을 생각하면 중압감에 차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좋은 책으로 보답하고자 늦게까지 작업을 했더니 허기가 져서 1.2치킨코인으로 방금 순살허니콤보 하나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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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아이 같아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도를 누른 후, 아이는 남은 87개의 건반 중에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 겁에 질려요. 너무 많은 건반, 너무 많은 검은 색과 하얀 색, 너무 많은 화음, 너무 많은 가능성. 보면대에 놓인 악보는 사실 하나도 읽을 수 없는데,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 모른 채 손가락에 힘을 주지도 풀지도 못하고 울먹이는 것이 바로 청춘의 얼굴. 안쓰러워서 사랑스러운, 그저 처음 피아노 앞에 앉았을 뿐인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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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 자기 몫의 책상이 있거든 서랍 하나를 비워두세요. 거기에 마음을 보관해야 해요. 일하면서 가슴에 마음 넣어두는 거 아니에요.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의 진심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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