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유복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일곱 살이 되던 1921년에 평양으로 이사해 1923년 숭덕소학교에 입학한다. 소학교 시절에 황순원은 철봉이나 축구 등 운동을 즐겼으며 당시로선 드물게 스케이트를 타거나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도 했다. 1929년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정주 오산중학교에 입학했다가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했다. 오산중학교 재학 시절에 황순원은 남강 이승훈 선생을 만나게 되는데, 단편 <아버지>(1947)에서는 이때 만난 남강 선생을 묘사하고 있다. 1930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31년 7월에 처녀 시 <나의 꿈>을 ≪동광≫에 발표하면서 신예시인으로 주목받는다. 1934년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로 유학해 제2고등학원에 입학한다. 도쿄 유학 시절인 1934년에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 연구 단체인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한다. 그해 11월, 이 단체의 명의로 첫 시집 ≪방가(放歌)≫를 간행한다. 검열을 피해 도쿄에서 시집을 간행했다는 것이 빌미가 되어 황순원은 평양경찰서에 한 달간 구류를 당한다. 1935년에 신백수, 이시우, 조풍연 등의 주도로 모더니즘을 표방하던 문예지 ≪삼사문학≫에 동인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1936년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고, ≪창작≫의 동인이 되었다. 1937년에 ≪창작≫ 제3집에 <거리의 부사(副詞)>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한다. 1939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후, 1940년에 첫 단편집 ≪황순원 단편집≫을 간행한다. 1946년에 월남해 그해 9월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취임한다. 이후 황순원은 단편집 ≪목넘이 마을의 개≫(1948), ≪기러기≫(1951), ≪곡예사≫(1951), ≪학≫(1956), ≪잃어버린 사람들≫(1958), ≪너와 나만의 시간≫(1964), 장편소설 ≪별과 같이 살다≫(1950), ≪카인의 후예≫(1954), ≪인간 접목≫(1957),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일월≫(1964), ≪움직이는 성≫(1973), ≪신들의 주사위≫(1982) 등 한국 문학사를 아름답게 수놓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하며 독보적인 소설 미학을 완성한다. 1966년 3,1 문화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3년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 등을 수상했다. 경희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1980년 문학과지성사에서 ‘황순원 전집’을 발간하기 시작해 1985년 전 12권으로 완간했다. 2000년 9월 서울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동리
191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1933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당선되고, 1935년과 1936년에는 각각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소설 [화랑의 후예]와 [산화(山火)]가 당선되었다.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취임하였다. 아세아자유문학상(1955), 대한민국예술원상(1958),3,1문화상(1967), 국민훈장 동백장(1968), 서울특별시문화상(1970)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등신불』 『무녀도』 『황토기』 『귀환장정』 『사반의 십자가』 등이 있다. 1995년 사망했다.
장용학
1921년 함경북도 부령에서 태어났다. 1942년 와세다대학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학업 중인 1944년 학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하였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제대한 후 1947년 월남하여 1948년 한양공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0년 단편 [지동설]이 《문학예술》 5월호에 추천되었고 다시 1952년 단편 [미련소묘]가 같은 잡지 1월호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대표작으로 [요한 시집] 『원형의 전설』 [현대의 야(野)] [유피(遺皮)][비인탄생(非人誕生)] [역성서설(易姓序說)] 등이 있다. 1999년 사망하였다.
손창섭
192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 1935년 만주를 거쳐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니혼대학에 들어갔으나 중퇴 후 초등학교 교원, 잡지 편집원 등을 전전했다. 1946년 평양으로 돌아왔다가 1948년 월남했으며, 1949년 연합신문에 [얄궂은 비]를 연재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52~1953년에 『문예』지에 [공휴일]과 [비오는 날] 등의 단편소설이 추천되어 활발한 집필활동을 펼쳤다. 1955년 [혈서]로 현대문학상을 받고, 1959년 [잉여인간]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이 뜸해지다가 1973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1976~1977년 한국일보를 통해 장편소설 『유맹』과 『봉술랑』을 연재하였으나, 이후 오랫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후 아내와 함게 도쿄에서 거주해 오다가 2010년 6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소설 [사연기(死緣記)][치몽(稚夢)][신의 희작(戱作)] [육체추(肉體醜)] [흑야(黑夜)]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낙서족(落書族)』 『부부』 『인간교실』 『길』 『삼부녀』 『유맹(流氓)』 등이 있다.
이범선
1920년 평안남도 신안주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북한에서 토지개혁이 시작되자 월남한 뒤 1952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55년 [암표]와 [일요일]이 《현대문학》에 김동리에 의해 추천되면서 문단에 나온다. 대표작으로 『오발탄』 『학마을 사람들』 『피해자』 『분수령』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신인문학상(1958), 동인문학상(1961), 월탄문학상(1970)을 수상했다. 1982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