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형제들
1. 김설송
김정일과 두 번째 부인인 김영숙 사이에서 1974년 12월 30일 태어났다. 김설송 밑으로 북한 언론매체에 노출되지 않고 있는 김춘송이라는 여동생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설송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주변으로부터 영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전해진다. 김설송은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맡고 있었지만, 김정은 정권부터 조직지도부 부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설송은 현재 조직지도부 부장으로서 간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평가하고, 재정경리부까지 관장하고 있으며, 김정은의 비자금 관리부서인 ‘39호실’을 담당하고 있어 북한에서 상당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은 이복누나 김설송에게 자문을 구하고 누나로서 예우해 주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이 김설송을 중용하는 것은 자신의 친형인 김정철과 달리 이복 누나인 김설송은 자신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은은 남을 지나치게 의심하는 편집증으로 인해 친형인 김정철마저도 자신의 지위를 언제든지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2. 김정남
김정일과 첫 번째 부인 성혜림 사이에서 1971년 5월 10일 태어났으며, 실질적으로 김정일의 장남인 셈이다. 김정남의 존재를 김일성이 안 것은 1975년 무렵, 즉 김정남이 네 살 지나서였다고 한다. 김일성은 처음에 상당히 화를 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자신의 손자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일성도 자신의 건강을 담당하던 간호사와의 사이에서 김정남과 출생 연도가 같은 김현이라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김정남의 존재에 대해 김정일을 야단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교활한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약점인 김현의 존재를 파악한 뒤, 그 사실을 이용해 김정남의 존재를 김일성에게 알렸다고 볼 수도 있다.
이윤걸의 『김정일의 유서와 김정은의 미래』에 따르면, 김정일이 유서에서 자식들을 걱정하며 특히 김정남을 많이 배려해야 한다면서, 김정남이 나쁜 아이가 아니니 애로를 많이 배려해 주라는 명령조의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김정남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나마 김정남의 이모인 성혜랑의 자서전 『등나무집』과 성혜랑의 아들이자 김정남의 사촌인 이한영의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통해 김정남의 어린 시절 일부를 알 수 있는 정도이다. 따라서 김정남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두 책의 내용을 인용해 서술하고자 한다.
이한영은 김정남이 다섯 살 때인 1976년부터 자신이 한국으로 탈출한 1982년까지 매해 김정남의 생일을 지켜봤다고 한다. 이한영(2004)에 따르면, 북한에는 김정남의 5월 10일 생일에 대비해 호위사령부에 선물구매담당 부서가 있고, 생일선물 구매를 위해 일본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심지어는 독일과 오스트리아까지도 간다고 한다. 선물 규모는 백만 달러정도라, 이한영이 보기에는 김정일이 김정남한테 하는 선물 규모를 보면 한국 재벌들이 좀스럽게 보일 정도라 한다. 선물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가 있고, 금도금한 장난감 권총도 있으며, 특히 아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전자오락기구는 값에 관계없이 모두 구입해 선물한다고 한다.
김정남은 5월 10일 생일날에는 인민군 원수복을 입고 명예위병대를 사열한 뒤 김정일 손을 잡고 3백 평 정도 되는 오락실로 들어가 선물을 둘러본다고 한다. 또한 김정남의 생일마다 러시아 육해공군 원수복과 북한 인민군 원수복을 맞춰준다고 한다. 김정남은 매년 생일마다 계급이 진급했는데 세 살 때 소장, 네 살 때 중장, 다섯 살에 상장, 여섯 살에 대장, 일곱 살에 원수, 여덟 살 때는 대원수로 진급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계급장을 군복에 달아주었으며, 여덟 살 이후 관저에서는 김정남을 ‘대원수 동
지’로 불렀다고 한다. 김정일은 김정남의 이름을 부르거나 간혹 ‘부관’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