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흔들립니다
- 박지훈
아버지는 열 시가 되면 학교에 오십니다.
우리 차는 아니지만 회사 1톤 트럭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했는데
교통 어중한하고 밤길 험하다며
말하지 않아도 도착해 있습니다.

오늘은 열 시가 되어도
트럭이 없습니다.

휴대폰으로 연락했더니
아버지는 교문 옆에서
떨리는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한잔했습니다.
오직 자식 둘만 바라보는 아버지가
독한 술을 한잔했습니다.

누구와 마셨나 했더니

“마음이 괴로워 혼자 뭇다,”
아버지 눈은
구슬피 달빛을 흘립니다.

술에 취했는지 괴로움에 취했는지
팔짱 끼고 있는 아버지가
나를 잡고 흔들립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아름다운 향기
시인이 지나간 발자국을 조용히 따라가다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늘 교문 앞에 트럭을 세워 놓고 시다리시는 아버지가 오늘은 맨몸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도, 아버지를 부축하고 있는 시인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도 흔들리는 아버지가 외롭지 않으신 것은 아버지를 위해 내어드릴 수 있는 시인의 따뜻한 가슴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버지와 시인이 만들어 가는 삶의 향기가 눈물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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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편지함에 읽지 않은 메시지 7개가 있습니다.

“살아 있다면 리플!”
메일은 지구 맞은편에서 날아왔네.

다섯 줄짜리 안부에
스크린을 내리고
또 올리고,

굴림체 9pt 네모진 선을 따라
먹물을 떨어뜨린 듯,
낯익은 미소가
모니터 위에 얼룩져 가네.

2002. XX. XX.
일요일 늦은 아침은
시리얼 한 그릇,
반가운 너와 함께.

체험과 밀착된 신선한 발상
시인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든 한 행 한 행이 긴장감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생활 속에 얼마나 섬세하게 파고드느냐에 따라 시의 소재가 무궁무진할 것 같군요. 이 시가 특히 강렬하게 와닿는 이유는 가장 익숙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 때문일 거예요. 메일 보관함 속에, 키보드와 스크롤 바 속에 너와 나의 어제와 오늘 삶의 이야기들의 쌓여 갑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 속에서 의미를 캐내는 눈, 스쳐 기나가는 순간에도 의미있게 말걸기를 할 줄 아는 것에서부터 시 창작은 출발하지요.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머물고 있는 그곳,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너를 향한 진실하고 진지한 속삭임이 우리들 시의 숲을 울창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이낭희 선생님의 시 지도 방식은 교사의 위치에서 내려와 한 사람의 독자로 시를 바라보는 것이다. 국어 교사이지만 시를 평가하는 대신에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응원을 보내는 것이 다였다. 이러한 시 지도 방식은 책에 있는 학생들의 시에서 잘 드러난다. 학생들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시를 쓰기 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라는 형식을 빌어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춘기 시절의 방황이나 다 못다한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을 찾아낸 듯이 보인다. 즉, 학생들의 시에는 문학을 넘어선 한 학새과 그 학생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보인다. 청소년기의 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문학을 빌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문학 수업’의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만든 이 책에는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동시에 학생들 시의 진솔한 이야기를 보면, 판단이나 가르침 대신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응원해 주는 방식의 문학 수업이 얼마나 요긴하면, 또 지금의 교실에서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된다. <br/><br/><br/>또한 시 뒤에 있는 청소년기 학생들의 이야기는 비단 한 학생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 사춘기를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청소년기의 감정’이라는 공감대로 세대를 뛰어 넘어 엮어주는 힘이 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연민 그리고 학교 생활에 대한 애증, 입시에 대한 버겨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 등등은 누구나 겪었던 감정이다.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는 선입견 뒤에 있는 어른의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오늘의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다. <br/><br/>동시에 기성세대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별한 발상, 표현법 그리고 좀 더 솔직한 모습 등 새로운 청소년 들의 감성도 만날 수 있다. <br/><br/><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