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언제나 상황에 의해 좌우된다. 휴식 시간에 넓은 운동장을 주름잡는 날렵한 아이가 수업종이 울리고 나서 잘 정돈된 교실로 환경이 바뀌면 느림보가 될 수도 있다. 20세기 중반에 조지프 스탈린은 교황에게 비꼬는 어투로 가톨릭에 얼마나 많은 분파가 난립하느냐고 물었는데, 사상의 측면에서 50년 후에 교황제는 살아남았던 반면 스탈린의 제국은 붕괴되고 말았다.
오늘날 세계의 권력은 복잡한 3차원 체스 게임과 유사한 형태로 분포되어 있다. 상단 체스판에서 군사력은 거의 단극 체제를 이루면서 한동안 미국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듯하다. 그러나 중단 체스판에서는 경제력이 10년 이상 다극 체제로 지속되는데, 미국, 유럽, 일본, 중국이 주요 세력으로 활동하고 다른 국가들이 세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의 경제력은 미국보다 우세한 입장이다. 하단 체스 판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국경을 초월한 국제관계의 영역으로, 여기에는 한꺼번에 국가 예산보다 많은 자금을 전자거래로 운용하는 투자가들, 위험한 살상 무기를 다루는 테러범들, 보안이 취약한 사이버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는 해커들과 같은 다양한 비국가적 행위자들이 포함된다.
국가들은 무역에서 더 큰 수익률을 확보하거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국내 단체들에 편의를 제공하려는 보호주의적 차원에서 자국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지만, 많은 보호주의적 수단들에는 권력 창출의 목적도 내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유럽연합이 과거의 식민지들에 우호적인 시장 접근을 보장했던 것은 역사적 부당 행위에 대한 보상(소프트 파워의 창출에 대한 기대)이나 신식민지 통제의 수단에 대한 적용(하드 파워의 창출에 대한 기대)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정치는 신뢰성의 우위를 다투는 경연장이 되었다. 전통적인 권력 정치의 세계는 특히 군사력이나 경제력의 승자를 결정하는 데 치중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보화 시대의 정치는 ‘아마도 콘텐츠로 승자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정부들은 자신들의 신뢰성을 강화하면서 상대들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다른 정부들을 비롯한 다른 많은 조직들과 경쟁한다. 2000년에 벌어진 사건들을 두고 세르비아와 나토가 벌였던 분쟁이나 2009년 이란의 대통령 선거 후에 일어난 정부와 시위자들의 충돌을 생각해보라. 초국가적 소통에서 전자의 경우는 방송과 인터넷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후자의 경우는 인터넷과 트위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사이버 영역은 인간에 의해 창조되고, 최근에 등장했으며, 급격한 기술의 변화에 다른 영역들보다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한 논평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사이버 공간의 지형은 다른 환경들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하다. 산과 바다는 이동시키기 어렵지만 사이버 공간의 영토는 버튼 조작에 의해 생겼다가 사라진다.” 낮은 진입 장벽은 사이버 영역에서의 권력 분산에 기여한다. 거대한 선박이 바닷물의 마찰을 헤치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보다 전자가 세계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도 훨씬 저렴하고 속도 면에서도 빠르다. 항공모함 선단과 잠수함 함대의 개발 비용은 엄청난 진입 장벽을 생성하며, 이런 이유에서 미국이 여전히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해적행위가 소말리아나 말라카 해협 같은 지역에서 비국가적 행위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남아 있지만, 해상권은 여전히 비국가적 행위자들에게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공중의 영역에서도 많은 민간 행위자들과 정부 행위자들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국가들만이 5세대 전투기와 위성 지원 시스템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통해 제공권 장악을 추구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이 세계 생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핵무기에서 압도적인 자원을 보유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세계의 패자라고 여겼지만, 미국은 중국의 ‘상실(공산화/옮긴이)’을 막지 못했고, 동유럽에서 공산주의를 억제하지 못했으며, 한국전쟁에서 분단을 예방하지 못했고, 북베트남에서의 ‘패배’를 멈추지 못했으며,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심지어 소위 미국의 패권기에도 다른 국가들에 변화를 강제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위협의 고작 5분의 1과 경제적 제재의 절반만이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다. 앞서 1장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자원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권력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권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드시 상황, 범위, 영역이 규정되어야 하고 과거의 찬란한 영광이 역사의 평가를 윤색할 위험이 존재한다. 애매한 정의와 자의적인 역사는 우리에게 패권과 쇠락의 대이론을 경계하게 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