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병상에 앉아 나의 여윈 손가락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전국의 여러 지방에는 일제히 기차가 정차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인생에 따라 기차에 타거나 혹은 내린다. 나는 눈을 감고 그런 정경을 상상한다. 그러다 보면, 그 시간에 각 선의 어느 역에서 기차들이 교차하는지까지도 발견한다. 무척 즐겁다. 기차가 교차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필연이지만 타고 있는 사람들이 공간적으로 교차하는 것은 우연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러 고장에서 펼쳐지는 스쳐 지나가는 인생을 한없이 공상할 수 있다. 타인의 상상력이 만든 소설보다도 자신의 공상이 훨씬 흥미롭다. 꿈이 떠다니는 고독한 즐거움이다.”
--- 본문 중에서
“사야마가 왜 오토키를 도중에 내리게 했는지, 오토키는 아타미나 시즈오카에서 사오일 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일단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어.”
“주임님도 저하고 같은 생각이시군요?”
그 말에 주임이 고개를 들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그러니까 이 자료들을 보면 두 사람의 동반 자살에는 한 치의 의문도 없지만, 뭔가 다른 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시죠?”
미하라의 말을 들으며 주임은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이봐, 우리가 잘못 짚었을 수도 있어. 사야마가 죽는 바람에 이번 비리 사건의 수사가 타격을 입었다고 해서, 지금 우리는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까지 의심하려고 하고 있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경찰 근성이 나오는지도 모른다고.”
듣고 보니 그런 위험한 심리도 없지 않았다. --- pp.92-93
내가 이렇게 병상에 앉아 나의 여윈 손가락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전국의 여러 지방에는 일제히 기차가 정차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인생에 따라 기차에 타거나 혹은 내린다. 나는 눈을 감고 그런 정경을 상상한다. 그러다 보면, 그 시간에 각 선의 어느 역에서 기차들이 교차하는지까지도 발견한다. 무척 즐겁다. 기차가 교차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필연이지만, 타고 있는 사람들이 공간적으로 교차하는 것은 우연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러 고장에서 펼쳐지는 스쳐 지나가는 인생을 한없이 공상할 수 있다. 타인의 상상력이 만든 소설보다도 자신의 공상이 훨씬 흥미롭다. 꿈이 떠다니는, 고독한 즐거움이다. --- pp.137-138
4분간의 목격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그것은 야스다가 만든 필연이었다. 삿포로 역의 가와니시와 도쿄 역의 종업원들은 모두 야스다가 만든 목격자다. 야스다 본인이 동반 자살 현장에 부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삿포로 역과 도쿄 역 두 곳에서 이루어진 야스다의 조작은 규슈 하카타의 근교 가시이에서 교차한다. 전부 그가 그곳에 없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 p.162
“이렇게 해서 야스다의 알리바이가 무너졌군. 아, 알리바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가?”
“아뇨,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스다가 그 시간에 자살 현장에 갔을 리가 없다는 조건이 사라졌으니까요.”
미하라가 주장했다. 그것은 거의 신념이었다.
주임은 책상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갔을 리가 없다는 조건이 사라지면, 갔을지도 모른다는 조건이 생기겠군?” --- p.178
사야마와 오토키는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거의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고, 저희는 잘못된 선을 그어서 둘을 묶은 겁니다.
--- p.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