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적 행동은 하고 있지만 정작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여전히 목마릅니다. 갈급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내가 그런 신자였습니다. 교회 안에 있었으나 막상 예수님과는 관계없었습니다. 그런 자에게 예수님은 “생수의 강이 필요하다! 성령이 필요하다! 성령 세례가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은 나의 낡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라도 새 것으로 바꾸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가 새 가죽 부대가 되어 새 포도주 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옛 부대에 새 포도주를 붓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 터져서 포도주를 잃어버리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포도주를 부어 달라고 구하기 전에 새 가죽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큐티를 통해 새 포도주를 부어 주실 때 저항하지 않고 새 가죽 부대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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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혼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하신 장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불쑥불쑥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 끝내야 할 일들, 만나야 할 사람들, 여러 감정들이 떠오르더라도 그때마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정한 장소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면의 조용한 장소란 고요함 그 자체가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은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기의 존재감을 분명히 활동적으로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느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기다림은 명상이 아닙니다. 자기를 묵상하며 자기에게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읽으며 말씀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요.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며 집중할 때, 성령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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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말씀이 공급되어야 자랍니다. 내가 절망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말씀을 공급받지 못해서입니다. 내 자녀가 주저앉아 있는 것, 결심하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말씀을 먹지 못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하나님 뜻대로 되겠지’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일 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게 됩니다. 마치 갓난아이가 젖을 먹으면서 하루하루 자라듯이 말이지요.
말씀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합니다. 하나님께 인도해 그분을 알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아야 그 말씀이 내게 의미가 있습니다. 큐티를 통해 말씀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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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는 듣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우리는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며, 변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달하신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 안에 있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살지만 사실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사시며 아버지의 뜻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 저를 통해 주님의 삶을 사시도록 내어 드립니다. 주님을 신뢰합니다”라고 고백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허락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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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참된 예수님의 능력을 누가 끄집어낼 수 있나요? 내 앞에 서 있는 원수만이 나의 실상을 드러내 주고 나의 껍데기를, 포장을, 이중성을 한순간에 벗겨 냅니다. 나의 나 됨을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우리는 큐티하면서 누군가를 변화시켜 주시기를 바라는데, 하나님은 큐티하는 나를 가장 먼저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 꿇는 자를 먼저 깨끗케 하십니다. 큐티한 만큼, 기도한 만큼 내 안에 있는 죄성과 악함을 봅니다. 돌 같은 마음이 깨지고 부서져서 부드러워지고, 겸손해지고, 온유함으로 나타나는 변화를 주십니다. 큐티한 후, 기도한 후 더 세지고 거칠어지고 오만해지고 완고해진다면 하나님을 만난 큐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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