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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홀씨처럼 살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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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홀씨처럼 살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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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94g | 140*210*15mm
ISBN13 9791156226024
ISBN10 115622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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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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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의 얼굴이 노을만큼이나 붉게 물들어 있다. 상도의 몸을 밀쳐내며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소릴 지른다.
“이게 뭐 하는 거니껴? 이게 뭐 하는 거냔 말이니더!”
송이의 눈에서 살기마저 느껴진다. 송이의 눈빛이 아니다. 어떤 누구도 송이에게서 이런 눈빛은 본 적이 없다. 당황한 상도가 한 걸음 물러서며 송이의 손을 풀려고 한다.
“아저씨가 뭔데! 아저씨가 뭔데 우리 초록이 때리니껴?”
“…….”
“야가 뭘 잘못했는데요? 말해 보이소. 우리 초록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 보이소. 아들이 놀자고 해서 논 게 죄니껴? 야가 놀자고 했니껴? 옛날에 할배가 그런 걸 가지고 와 아직도 아한테 이러는 건데요?”
상도는 할 말이 없다. 어쩜 자신은 지금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초록이 송이를 보며 그러지 말라는 듯 손짓을 한다. 깨끗하던 옷은 더럽혀지고 팽개쳐진 모자는 모래 위에서 뒹굴고 있다. 콧물까지 흘리며 우는 초록의 모습, 송이도 지금껏 본 적 없는 모습이다.
“저기 위에 영민이 보이소. 사람들이 자를 보고 놀리면 좋겠니껴? 다리 병신이라고 놀리면 좋을 것 같아요? 자가 먼 잘못이 있는데요? 야도 똑같은 거 아이니껴?”
영민의 눈에 비친 아버지 모습이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상도는 영민을 두고 하는 말에 화가 나 송이를 밀쳐냈다.
“자는 몸이 불편한 거고 야는 빨갱이 새끼다. 그게 같은 기가?”
“빨갱이요? 아저씨도 월남에서 그래 사람을 많이 죽였다매요. 배를 갈라서 피까지 먹었다매요. 아저씨 손에 가족 잃은 사람들은 아저씨를 뭐라 하겠니껴? 베트콩요? 전쟁을 그 사람들이 일으켰니껴? 그 전쟁을 누가 한 건데요?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것을 그 사람들이 만들었니껴?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군인이지 강아지 새끼까지 모조리 죽였다고 자랑하는 게 군인이니껴? 사람이라면 이럴 수 없는 거니더. 어른이 코흘리개한테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거니더. 이게 아저씨가 말하는 사나이니껴? 이게 아저씨가 말하는 사나이냐구요?”
--- 「엄마 냄새」 중에서

심판은 다운을 선언하며 양 선수를 갈라놓았다. 심판이 카운트하는 동안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어 보았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시작!’ 하는 구령과 함께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고 킥 공격으로 상대 선수를 견제하며 시간을 끌었다. 1라운드는 그렇게 끝이 났다. 돌아오는 민수를 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할 수 있겠나?”
상대 선수는 여전히 여유로웠고 민수는 그런 모습을 보며 관장에게 말했다.
“제가 포기하지 않는 한 관장님이 기권하시면 안 됩니다. 아시죠? 제가 어떻게 살아왔고 왜 운동을 해왔는지.”
민수는 마우스피스를 다시 입에 물고 심호흡을 했다. 얼굴의 상처가 부어오르고 있었다. 2라운드는 더욱 힘든 라운드였다. 민수의 기습 공격에 상대 선수의 턱이 돌아가며 잠시 멈칫하기도 했지만 민수는 두 번이나 다운을 더 당했고 링 위에 쓰러져 상대 선수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것을 빠져나온 것만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방송을 중계하던 중계석에서도 거기 모인 관중석에서도 민수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무섭게 부어오른 민수의 얼굴을 보며 옥희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만하자. 이만하면 됐다.”
관장의 말에 민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뇨! 그럴 순 없어요. 누나를 위해서라도 이겨야 합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분이다. 민수에게 남은 시간은 3분이 전부이다. 허점이 보일 때마다 킥과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지친 민수의 킥은 힘이 실리지 않았고 부어오른 눈두덩으로 인해 앞도 흐려지고 있었다. 연희가 건네주던 초코파이 생각이 났다. 함께 이불 속에서 듣던 노래 생각이 났다. 소풍날 자신을 안아주던 연희의 품이 생각났다.
--- 「연희 누나」 중에서

역북동 집 처마 밑으로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보며 대호가 앉아 있다. 비가 와서일까? 거기에서 뭘 하는지, 왜 낯선 곳에서 혼자 살고 있는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워갔다. 아버지의 얼굴, 춘희의 얼굴, 많이 자랐을 근석의 모습, 아직도 아버진 춘희를 보며 아줌마라고 부르는지, 근석은 여전히 장독대 위에 앉아 해바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전화해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해서 뭐 해? 인제 와서 뭐라고, 몇 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아니야. 내가 살인범이 아니란 말은 해줘야 해. 아니, 그것도 아니야. 때가 되면 밝혀질 텐데. 괜히 전화했다가 추적당하면 큰일 날 수도 있어. 그래, 돈을 버는 거야. 일단은 돈을 많이 버는 거야. 그래서 고향에 가는 거야. 철윤이 놈 잡아서 누명 벗고 당당하게 사는 거야.’

애당초 1단지 창고를 가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만 가지 않았어도 대호의 신상엔 아무 일 없었을 테다. 아니 정 사장을 살리려 다가가지만 않았어도 되었을 일이다. 칼에는 왜 손을 대었나. 칼을 빼면 더 위험해짐을 왜 알지 못했나. 아니 그것도 아닌 그 순간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누명 씌우고 도망갈 놈이 철윤임을 왜 잊고 있었나. 차라리 업체 사장들 손에 끌려 경찰서에 갔더라면 누명을 벗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 철윤의 자백 없인 빠져나올 수 없는 일이었다. 피 묻은 장갑 낀 손으로 자신은 아닌 양 정 사장의 배에서 피를 막던 놈이 그놈이지 않았었나. 도망치는 것밖엔 길이 없었다. 하지만 어렵게 다다른 고향 수비는 예전 수비가 아니었다. 앞산 공동묘지 무덤 사이에서 보는 대호의 눈에 까만 지프가 즐비하고 경찰은 무리를 이뤄 골목을 헤집었다.
--- 「인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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