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유 여행’이란 멋스러운 단어가 주는 풍족함 이상으로, 내가 그 어려운 행위를 스스로 하고 있는 것, 그렇게 그리스란 나라에 와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더 만족스러운 것이다. 내가 나이듦에 있어서 무기력하지 않고 젊은이들처럼 해낼 수 있는 것, 그 긍정적인 마인드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 노년이기에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함.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 p.24, 「여행이 좋은 진짜 이유」 중에서
외국에서도 사람 구경은 재밌다. 세상엔 별사람들이 다 있다. 그 유명한 에펠탑 앞에서도 에펠탑보다 그 앞에서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는 또래의 노부부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어깨를 온통 드러낸 것도 모자라 젖꼭지가 보일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면, 저 노인네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를 가늠하려 한다.
--- p.28, 「사람 구경」 중에서
“그럴 수도 있지!” 자신의 무지를 당당함으로 무장하기도 하고 뻔뻔하게 받아들일 줄도 안다. 설령 상대의 실수라 하더라도 이렇게 웃으며 넘어가는 지혜로움도 있다. 다툼이 생겨 서로 떨어질 경우, 낯선 나라에서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감당 못할 외로움인지, 불안스러운 환경인지 알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혼자가 두렵다. 젊었을 때는 혼자, 고독, 사색, 그런 멋진 낱말들이 그립지만 노년이 되면 그런 것이 얼마나 두려운 낱말들인지 알게 된다.
--- p.36, 「하루 벌었다!」 중에서
내 남은 모두를 걸 만큼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은 어떤 여행일까?
--- p.91, 「이웃집 할머니의 조언」 중에서
기찻길을 따라 걸을 수는 없어 버스가 달리는 넓은 차도로 나왔다. 걸을 만한 도로가 아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차도 옆 좁다란 길을 걸었다. 키 작은 동양 할매 다섯이, 그것도 주위에 집들도 없는 넓은 차도에서 나란히 일렬로 캐리어를 끌고 가니, 사람들 눈에는 요상한 그림이겠다. 도대체 저 할매들, 어디서 온 할매들이며, 어디로 가는 중인가?
--- p.102, 「비틀스 아니고 부산 할매들」 중에서
설령 누군가가 나이든 그대를 모른 척하거나 적대시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그것은 그가 그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늙음, 그 육신의 추레함이 싫을 뿐이니까.
--- p.156, 「나이가 들면 그저」 중에서
글쎄, 70쯤 되면 그냥 조금은 아파도 좋은 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불편한 육신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만들어지고, 사용되어지고, 이용되어지고 그리고 노화된다. 그리고 노화된 것은 새로움으로 교체된다. 자연의 이치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p.164, 「조금은 아파도 좋은 나이」 중에서
오늘 영감은 서울에서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있다 하여 새벽에 나갔다. 물론 나 잠들 때 혼자 나갔다. 버스에서 아침식사를 줄 거라고 했다. 아침잠이 없는 영감은 내가 잠든 사이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다. 공복을 못 견디는 영감은 아침 일찍 혼자 토스트를 해서 먹는다. 자신의 아침 배를 채우겠노라고 마누라를 일찍 깨우는 것은 늙은 아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두어야 졸혼에 이르지 않는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있다. 그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냉장고에서 떡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녹여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아침을 때운다. 새삼 생각한다. ‘늙으니 참 편하구나.’
--- p.203, 「100살이 되어도 캐리어를 끌어야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