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통해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나와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쓰지 않고는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정확한 단어를 고른 뒤 뜻이 통하도록 문장으로 빚어내야만 비로소 생각과 감정이 명쾌해지니까요. 무엇이든 글로 써야 오롯이 내 것이 됩니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 심지어 인생을 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에 녹여두지 못한다면 한순간도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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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십시오.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역할 속에서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꽃보다 아름답던 그때로 돌아가 푸르른 젊음을 다시 건져 올리는 겁니다. 팔딱거리며 살아 있는 모습을 확인해보세요. 피부에 주름이 질지언정 영혼이 싱싱하면 우리는 영원한 청춘입니다. 자신과의 대화는 곧 피부를 뚫고 나와 바깥 세계로 전파를 날릴 것입니다. 그렇게 희망과 환호, 용기와 힘을 나누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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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스토리를 건지는 일은 평범한 자극을 인지하는 데서 시 작합니다. 그리고 그 끝은 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펜을 들고 끼적여보는 것이죠. 이 작은 수고로움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되고, 이런 이야기가 쌓이면서 자신만의 생각, 태도, 관점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게 바로 철학이고 가치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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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카메라로 포착하기 어려운 대상을 담아낼 때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감정과 생각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건 단순히 ‘어떤 사건이 있었다’가 아닙니다. 사건의 본질은 그래서 ‘나는 어땠다’가 아닐까요. 그 순간을 타임캡슐처럼 보존할 수 있는 것은 글쓰기뿐입니다.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면 충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글로 풀어야 풍 부하게 그 순간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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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 감정, 의견이 분명하지 않은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똑바로 전달하는 게 가능할까요? 어떤 분들은 잘 알고 있는데도 글로 쓰려면 잘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정말 잘 아는 걸까요? 잘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글로 나오는 게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설사 많이 알아도 정리가 안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말은 청산유수인데 듣고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듯하게 포장만 하는 겁니다. --- p.66
많은 주부들이 결혼하면서, 임신하면서, 출산하면서, 육아와 양육을 책임지면서 집으로 들어갑니다. 장밋빛 미래는 아니더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시들었고 쪼그라들었습니다. 축복받을 일인데도 엄마, 아내, 며느리, 결국 여자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일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남의 편인 줄 알지만 그래도 남편에게 기대고 싶습니다. 그러나 냉랭한 반응에 혼자 감당하고 체념하는 편을 택합니다. 상대적 박탈감은 여전히 어깨를 짓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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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글쓰기가 저를 살렸습니다. 저는 이런 감정들을 글로 풀었습니다. 일상적인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캐내는 일이 오히려 저를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줬습니다. 그러다가 희망사항 몇 개에 애 교를 섞은 뒤 빙빙 돌려 편지에 쓴 적이 있습니다. 닭살스러운 행동에 아내는 별말이 없었지만 이런 탄원서가 몇 번 이어지면서 다툼이 줄었습니다. 물론 수면 위로 기포가 터질 때는 여전히 고드름처럼 날이 서고 차갑지만 서로의 본심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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