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출근할 무렵, 스텔라는 몸을 펄럭이며 내려왔다. 그리고 선반 위에 쌓인 천에 내려앉아서, 사람들이 실내화를 갈아 신고 커피를 마신 뒤 천의 무늬와 재질을 확인하고 나서, 가위를 들고 윙윙 소리를 내고 있는 재봉틀 앞에 자리를 잡는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유령들에게 낮 시간은 항상 위험했다. 스텔라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낮에는 단 일 분도 평화로운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오후 여섯 시가 되어 공장의 커다란 문이 닫히면, 그제야 스텔라를 비롯한 다른 유령들은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었다. --- pp.45-46
'아얏!'
스텔라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핀이 꽂힌 부위가 따끔거렸다. 스텔라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온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재봉사는 스텔라를 힘주어 꽉 잡고는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작업 선반 바로 옆에 박쥐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쥐 부인은 천방지축 스텔라를 집어 들고는 왕방울만 한 눈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천은 코트의 재료로는 적당하지 않아요."
박쥐 부인은 쌀쌀하게 한마디 내뱉은 뒤, 스텔라의 몸에 꽂혀 있던 핀과 천 조각들을 재빨리 떼어냈다. 그 바람에 스텔라는 몸의 중심을 잃고 작업 선반 위에 있던 꽃병 위로 넘어져 버렸다.
"저건 당분간 식탁보로 사용하는 게 좋겠어요."
'저거라고? 물론, 나를 가리키는 말이겠지?'
스텔라는 비록 재봉틀의 날카로운 이빨 사이에 끼는 일은 피할 수 있었지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 pp.48-49
"아빠, 스텔라가 아빠 보고……."
스텔라는 갑자기 솟구치는 울분을 참을 수 없던 나머지, 피올라가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선반 밖으로 밀어 버렸다. 그 순간, 뮈삭 씨가 박쥐 부인과 꼬질이 팡을 앞세운 채 창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박쥐 부인은 코트를 입은 채 실내화로 갈아 신지도 않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깍쟁이 피올라는 겁에 질려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흠, 근로자들이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군요, 사장님. 저기 바닥에 천 조각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이시죠?"
박쥐 부인은 허리를 굽혀 피올라를 집어 올렸다.
"그건 그렇고, 이 천은 파리에서 주문받은 가방을 만드는 데 아주 적격일 것 같아요."
박쥐 부인이 뮈삭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뮈삭 씨가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어젯밤에 피네우스가 소동을 피우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어. 정말 쓸모없는 녀석이야. 안 돼, 팡! 얼른 이리로 와!"
"맞아요. 그 아이는 정말 어딜 내놔도 소용이 없는 아이에요."
박쥐 부인은 피올라를 주머니에 구겨 넣은 뒤, 창고를 나섰다.
스텔라는 두려움에 온몸이 굳은 채 선반 꼭대기에 누워 있었다.
"오, 이런 일이!"
말루 부인이 통곡을 했다.
"저 애가 우리 피올라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보셨죠? 이럴 줄 알았어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고요!" --- pp.94-95
하지만 이번에도 한발 늦었다. 태피스트리 유령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령들은 전속력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피네우스!"
스텔라의 목소리가 박물관의 빈 공간에 메아리쳤다.
"피네우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피네우스는 스텔라를 도울 수 없었다. 스텔라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이젠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다음 순간 스텔라는 바닥 중앙에 솟아 올라와 있던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난 이제 끝장이야. 다시는 무지개도, 일곱 번째 별도 볼 수 없을 거야. 첫 번째 진실도 영영 알지 못할 거야." --- pp.163-164
"그래, 유령으로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유령은 오 광년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경험하고 배워야 하니까."
스텔라는 빅토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모든 것 사이에는 시간이 있어."
빅토르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것과 이미 지나간 것 사이를 말하는 거란다. 인간은 그것을 현재라고 부르지."
"현재라고요?"
"그래, 또는 지금이라고도 해."
"여기를 말하는 건가요?"
"그래, 하지만 저기이기도 하지. 그건 네가 어느 때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져. 물론, 네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지."
"그렇다면 저는 어디에 있는 건가요?"
"너는 시간의 앞에 있단다."
"시간의 앞이라고요?"
--- pp.171-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