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중심에 시간여행을 하듯 오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골목이 있어요. 누구라도 이곳에 들어서면 보약을 먹은 듯 마음이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지지요. 삼백여 년 전 약령시의 맥을 이어가는 이곳은 바로 약전골목이에요. 빼곡히 늘어선 한약방마다 오늘도 여전히 한약 내음을 풍기며 알 수 없는 질병과 재해를 이겨낼 정성을 달이고 있지요.
진한 한약 내음이 그리워 약전골목을 거닐던 어느 날, 오래 전 이곳을 오갔던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들은 우리 땅에서 난 최고의 명약으로 병든 사람을 살려냈고, 쓰러진 나라를 구하려고 힘을 모았어요. 그런 어른들을 닮아가려고 했던 그때 아이들은 약전골목을 바쁘게 뛰어다니며 큰 꿈을 키웠어요. 이 글을 읽는 우리 친구들도 자랑스런 역사의 현장에 주인공이 되어 주면 참 좋겠어요. 그래서 또 다른 백초당 아이가 나타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백초당 할아버지, 대구약령시 한의약박물관 해설사님,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려주신 최유정 선생님, 그리고 부족한 글에 창작지원금으로 힘을 주신 대구문화재단과 학이사 대표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머리말」 중에서
“감초하면 함경도지. 이게 바로 그것이야.” 택봉은 감초를 들어 보이며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난 단박에 기를 살리는 산삼이나 영지가 좋아.” 택봉이 감초를 소쿠리에 툭툭 던졌다. 휘는 택봉과 생각이 달랐다. “아무리 약효가 뛰어난 약재라도 그것만으로는 쓸 수 없는 법이야. 감초와 같이 써야 되는 거 알지? 그래서 난 감초가 좋아.” 휘는 택봉에게 지기 싫어서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해 놓고 보니 조금 그럴싸한 말 같았다. 지금까지 누구 앞에서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정말 감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 넌 감초 같은 사람 되어라. 나는 산삼 같은 사람 될 테니까.” 택봉이 시원스레 말하고는 멍석에 남은 감초를 두 손으로 재빠르게 끌어모았다. 휘도 질세라 바쁘게 손을 놀렸다. --- p.60, 「감초 같은 사람」 중에서
“다들 자리에 앉게나.” 유 의원이 손짓을 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동안 통감부가 비밀리에 독립군의 자금줄을 찾으려고 했던 모양일세. 그런데 저자들이 대구를 지목하고 경성의 관리들을 내려 보낸 것 같네. 문제는 약전골목의 한약방을 집중적으로 뒤진다는 것이네. 이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말조심하고, 특히 이곳에 자주 왔던 사람들 이야기는 삼가야 하네.” 모두 숨죽이며 유 의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소문에 한약방의 약을 가져다가 전쟁터에 보내려고 더 압박한다는 말이 돕니다.” 수대의 말에 유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참, 별일을 다 겪는구먼. 내일 자네와 휘는 귀한 약재는 따로 싸서 숨길 준비를 하게나.” “예, 의원님.” 아저씨가 겁먹은 듯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 p.113~114, 「몰아닥친 바람」 중에서
나무장수는 휘를 동봉으로 데려갔다. 굴 앞에서 약초꾼 한 무리를 만났다. 휘가 명약으로 소문난 백초당에서 일하던 아이라고 소개하자 털보 아저씨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백초당! 지난해 구월산에서 만났던 독립군 중에도 백초당에서 일했다는 젊은 녀석이 있었는데.” “맞아. 어려 보였지만 아주 당찬 놈이었어.” 이어 털보 아저씨는 약초꾼들 중에 약전골목의 백초당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휘는 약초꾼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가슴이 뛰었다. 그 아이가 택봉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