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대상으로서 로컬은 그냥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는 별도로 로컬의 가치가 새롭게 창출되는 과정은 미래의 대안으로 이미 진행 중이다. 새로운 미래 가치가 폐허 위에서 움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관광지나 휴양지에만 머무는 로컬이 아니라 더 나은 거주지, 더 나은 일터, 더 나은 삶의 공간으로서의 로컬을 만드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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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도전은 도시를 떠나는 다른 많은 이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징은 이들의 나이대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부터 시작될 정도로 젊다는 것이다. 은퇴 후에 로컬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한참 직장 생활의 절정기에 로컬을 선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로컬을 선택하며 삶의 속도와 방향을 능동적으로 바꿨다.
--- p.33~34
“옛날부터 카페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단순히 카페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저한테 카페는 커피 한잔 하러 가고,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도란도란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이었거든요. 그래서 ‘소통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내가 여기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내 또래와 주변인에게 영월이 살 만하다고 이야기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엄정원, 레비로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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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양조장을 찾다가 2014년 말에 강릉에 오게 됐는데, ‘바로 여기다’라고 생각했어요. 지금(2019년)은 평창 동계 올림픽 때문에 많이 깔끔해졌지만 그때는 문 닫은 철물점 등 1970년대 광경이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훨씬 낙후된 느낌이었지만 우리가 만들려는 맥주를 여기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래된 막걸리 공장을 찾아서 끊어져 가는 강릉의 술 역사를 잇기 위해 새로운 강릉 수제 맥주를 만든다는 스토리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전은경, 버드나무 브루어리 대표)
--- p.37
스타벅스는 상권을 유량(flow)이 아니라 저량(stock)으로 본다. 즉,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어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손님들은 머무르기 위해 스타벅스라는 공간을 찾고, 공간의 의미가 담긴 텀블러와 같은 굿즈를 사면서 소비가 확장된다. 반면 고속도로 휴게소는 지나가다 즉흥적으로 한 번씩 방문하게 되는 곳이다. 따라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 판매에 주력한다. 계속 찾고, 머무를 수 있도록 로컬 특유의 라이프 스타일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컬 벤처는 스타벅스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 p.41~42
도시에서는 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북 카페가 흔하지만 로컬에는 책도 읽고 머물기도 하는 북 ‘스테이(stay)’ 서비스가 있다. 오래 머물면서 책도 보고 로컬을 이해하라는 의미다. 북 스테이는 단순히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로컬 주민과 함께 문화 활동을 진행하는 복합 문화 공간의 역할도 한다.
--- p.50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 같은 취향을 갖고, 나와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면 지방을 이탈하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사라질 것 같아요. 그래서 청년들 간의 관계 맺기가 중요합니다.” (오석조, 문화 인력 양성소 협동조합 판 대표)
--- p.72
낯선 사람의 등장은 단순한 뉴스를 넘어 공동체 유지를 위한 새로운 생각거리가 될 수도 있다. 즉, 같이 오래 살 사람인가, 적당히 있다가 돈 벌면 떠날 사람인가, 아니면 그냥 도시 친구들만 데려와서 동네만 시끄럽게 만들 존재인가 등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친구로 존재할지, 골칫거리가 될지, 도움이 될지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로컬의 문화다.
--- p.74~75
“가장 큰 브랜드 가치가 지역에 있고 내가 강릉에 있으면서 이걸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행사든 이벤트든 무엇을 하든 지역과 연관되어야 한다고 늘 같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게 여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었어요. 로컬, 로컬, 로컬이라고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어디를 향한 로컬인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배효선, 홍제원 대표)
--- p.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