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사람의 시간도 아니고, 성자의 시간도 아니다. 계절이라는 하늘의 사대신성(四大神性)의 시간이다. 순수 추억에는 날짜가 없고, 계절이 있다. 계절은 추억의 표지이다. 기억해야 할 그날에, 하늘은 어떠했으며 바람은 어떠했는가? 그것이 어렴풋한 추억에 올바른 긴장을 부여하는 문제이다.”(바슐라르, 『몽상의 시학』)
여기에 실은 글들은 몇 해에 걸쳐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추이를 따라 쓴 것들이다. 끝에는 날짜를 명기했다. 드물게 빠진 날짜도 있고, 중복되는 날짜도 많다. 중복된 날짜는 쓰인 연도가 다른 경우이다. 날짜가 있다고 해서 일기는 아니다. 단지 그날 쓴 것임을 밝힌 것이다. 그래야 시간과 계절의 추이를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마주치는 그리움, 몽상, 생각의 단편들을 꿰거나 깁지 않고 그냥 그대로 널어놓았다. 그래서 논리나 두서가 없고, 생각의 깊이나 넓이와도 관련이 없다. 좁고 얕을망정 내겐 참으로 소중한 것들이다. 내 마음의 무늬, 기대, 기억, 행로, 바람, 삶, 만남, 죽음, 욕망, 비, 눈, 상처, 아픔, 외로움, 이별, 애착, 환멸, 그리움, 사랑, 유년, 일상, 환영 등이 켜켜이 쌓여 있다. 누구이든 내 마음의 고랑을 따라 함께했으면 참 좋겠다.
---「책머리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