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나는 신과 종교를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실소가 나오도록 어렸던 내 나이 열일곱 살에 로마 가톨릭 수녀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7년을 보냈다. (설령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도) 난 그 종교적 경험을 포기하지 않았겠지만, 그 경험은 영적으로는 나를 고갈시켰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나 결코 수녀원에서 기대하는 방식으로 기도할 수는 없었다. 종교의 다양한 교리들마저 점점 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경험했던, 제도화된 기독교가 지닌 형식들은 종종 자비롭지 못한 것으로 보였고, 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사랑의 메시지에서 눈을 돌린 듯하였다. 나는 점점 더 교회로부터 고립되었다고 느꼈고, 1970년대 중반 결국 그곳을 떠났다. 내게는, 그것이 전부였다. 어떤 종교적 활동에 다시 관여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불가능했다.
내가 종교적인 것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다른 종교들을 공부하면서였다. 나는 그것들을 알게 되면서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전통이 최상의 상태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 여러 가지 종교들 가운데 하나가 불교였다. 처음에는 불교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불교는 내가 종교의 본질적이라고 생각했던 속성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였다. 신(神), 의무의 교리, 영적인 것에 대한 믿음, 죄의식, 권위 있는 인물 등, 불교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세 일신교, 즉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내 직업의 주제로 삼아왔다. 그러나 영적 탐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불교의 접근 방식에 뭔가 참신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좀더 배우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붓다의 짧은 전기를 써달라고 부탁받았을 때 나는 그가 일으킨 종교를 깊게 연구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그 경험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후에 (깨달은 자 혹은 깨어난 자라는 의미의) 붓다가 된 고타마가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붓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붓다에게서 멀어질 수 없었다. 모두 인도 북부의 마을과 도시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불교도들의 정착지는 ‘멋진’ 장소 같았다. 왕과 상인은 붓다의 조언을 구하러 그곳에 들르기도 했고, 젊은이의 무리는 붓다의 영적 가르침을 듣고 그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화려한 수레를 타고 몰려 왔다. 붓다가 마을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그의 곁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즐거움을 얻으려 서로 다퉜다.
그렇다면 도대체 붓다가 뿜어낸 매력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붓다의 친구였던 코살라의 왕 파세네디는 어느 날 거대한 열대수로 가득 찬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갑자기 붓다를 떠올린다. “그곳은 조용했다. 어떠한 거슬리는 목소리도 그 평화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곳은 “일상의 세계로부터 떨어진”, 누구라도 어려움에 빠졌을 때 쉴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성내고 비우호적이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붓다를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사나운 동물도 그의 앞에선 온순하고 조용해졌다.” 우리는 모두 그런 안식처를 갈망한다. 붓다와 나 사이에 놓인 이 1500년이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그가 가진 매력에 빠졌다.
나는 그가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식에 깊은 감명을 느꼈다. 그것은 어떤 통속적인 텔레파시 따위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올바른 방식으로 사려가 깊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항상 그들의 말에 온 신경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재치 있는 말을 생각하거나, 이 사람이 내게 이로울지 해를 끼칠지를 계산하고, 자신이 가진 문제에 마음을 뺏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붓다는 자신의 필요, 두려움, 욕망을 통해 사람들을 보게 만드는 이기심을 제거함으로써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볼 수 있었다. (중략)
붓다는 남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과 실천적인 동정심이 실제로 한 사람을 ‘마음의 해방’에 다다르게 이끈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것이 내게는 헤아릴 수 없이 중요한 통찰이었다. 동정심은 단지 우리를 시험하는 계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성스러운 차원에 다가가는 길이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기도를 어렵게 느꼈다. 하지만 동정심의 규율은 삶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붓다는 나의 영적 생활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이 자비로운 첫걸음은 분명 오늘날 이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붓다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또한 사람이 사람에게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광경 앞에 종종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우리는 싯닷타 고타마가 깨달음을 겪은 후에 세상의 무자비함을 ‘붓다의 눈’으로 바라보고 남은 45년의 생애를 함께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더는 데 바치기로 맹세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모범을 따랐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훌륭한 곳이 되었을지 생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