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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여인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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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여인에 빠지다

: 춘향에서 향랑까지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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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569g | 152*212*30mm
ISBN13 9788960901896
ISBN10 896090189X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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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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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전소설에서 정채精彩 있게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 열다섯 명에 대한 글이다. 그녀들의 이름은 춘향, 숙향, 향랑 같은 것들인데, 이발소 사인의 세 색깔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쉼표 없이 ‘춘향숙향향랑’처럼 붙여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이름들은 ‘순이영이영자’와 같은 이름들로 대체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지금 눈으로 보면 조선시대 소설의 주인공들이지만 그녀들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던 여성들 가운데 하나였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시대의 그녀들은 21세기 오늘날을 살아가는 누구누구와 같은 여성들과 겹쳐져 몇백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다시 살고 있는 듯하다. 그 언저리 어디쯤엔가 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금년 봄 먹먹한 가슴으로 다시금 이 원고를 마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오래된 여성들이 지금 보아도 여전히 생동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머리에’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인간이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마련이고, 자신의 고유한 욕망이 무엇인지 끈질기게 들여다볼 수 있는 내공을 지닌 이는 오히려 소수에 가깝다. 설사 자신의 욕망을 안다 해도 불안정한 미래를 마주했을 때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슬쩍 기존의 가치나 질서에 기대면서 타협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선택이리라. 그런데 백능파는 이와는 다른 선택을 하였다. 동정 용왕의 막내딸 백능파. 용왕의 막내딸이라니, 얼핏 철없는 공주 캐릭터가 연상될 수도 있지만 백능파는 그와는 정반대의 여성 인물인 것이다.
-23~24쪽에서

그런데 김시습의 애정전기는 지금의 젠더적 관점에서 볼 때도 받아들여질 만하다. 그의 애정전기의 남녀 주인공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고 포착하고, 그 관계 안에서 남자도, 여자도, 귀신도, 인간도 변화해간다. 15세기의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울림이 있는 이유는 그 작품의 지향이, 가치가 오늘날에도 공감 가능한 ‘그 무엇’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공감을 형성해내는 김시습의 애정전기들. 이 작품들이야말로 명실상부한 고전古典임에 분명하지 않은가.
-52쪽에서

이와 비교해보면 마모는 그저 함께 전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하는 동지로 그려진다. 마모도 전쟁을 수행하지만 그녀는 중년의 여성이다. 아들도 아홉 명이나 된다. 더 이상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그녀는, 여리거나 여성스러운 태도로 승부를 걸 수도 없다. 그런 그녀에게 자기 자리가 있는 것은 그녀가 실제로 상황을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 상황을 헤쳐나가는 마모의 현실 대응력. 그것은 그녀의 자신감과 생명력에서 비롯한다. 자기 땅을 딛고 선 굳건한 허리와 두 발의 실루엣. 다른 이들이 늙고 추하다고 비웃어도 마모는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긍정한다. 이것이 바로 아줌마인 마모의 힘이다. 빛나는 젊음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지만, 그러나 삶의 경험이 뒷받침하는, 내용 있는 당당함은 거센 삶 앞에서 넉넉하다. 마치 대지의 그것처럼.
-74쪽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에도 주인공 올란도가 오랜 잠 끝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이 전환된 후, 의복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즉 의복이란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단순히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 이상의 중대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의복은 우리의 세계관을 변화시키고, 그래서 세계가 우리를 보는 눈도 변화시킨다. 『올란도』의 서술자는 ‘우리는 의복이 팔이나 가슴의 형상을 갖도록 만들지만, 의복은 우리의 정신과 두뇌와 혀를 그들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복장을 하느냐는 그 사람이 추구하는 바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떤 복장을 했느냐에 따라 행동 양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계월은 남복을 함으로써 남자처럼 보이고, 남자로서 세상에 편입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 남자의 옷을 입었기에 계월이 아닌 평국으로서 여성들에게 폐쇄적이었던 조선이라는 공적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가 있었다. 여자의 옷을 입었더라면 애당초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없으므로, 계월의 사회적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평국이 실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천자는 계월에게서 직첩과 봉록을 환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조정에 서거나 전쟁에 출정할 때에는 역시 남복을 하고 나서야 했다. 여성의 영웅적 행위는 남성으로 가장한 동안에만 가능했으며, 사회의 인정을 받는 것 역시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가짜 남성일 때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80~81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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