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시스템의 견고함, 기업의 견고함처럼 삶에도 그런 견고함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얻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견고함,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 줄 수 있는 삶의 견고함이라고 결론지었다. 우리에게는 심각한 존재의 위기가 더 자주, 언제나 찾아올 수 있지 않나? 살다 보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을 수도 있고, 나의 정체성을 지켜 주는 일을, 지위나 직책을 혹은 돈을 잃을 수도 있다. 병을 얻을 수도 있고, 정신적 안정이나 마음의 평안을 잃을 수도 있다. 애널리스트로서 내가 투자분석을 통해 기업의 견고함을 확인하듯이, 이 위기의 시기에 나 자신의 견고함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과연 무엇이 나를 이 험한 세상에서 불확실로 채워진 미래를 하루하루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걸까?
--- p.14~15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들을 ‘깜깜이’ 확진자라고 부르는데 시각장애인들이 반발해서 그 단어를 쓰지 않겠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런데 나는 그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시각장애인과 연관시키지 못했다. 44년이나 빛도 보지 못하는 생활을 해 왔지만, 나의 세계가 깜깜하단 생각은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p.17
장애인을 학생으로, 직원으로, 친구로, 심지어 배우자로 선택할 수는 있어도, 친부모나 친자식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 장애인 자녀가 있는 부모들의 생각과 마음, 노력 등은 어느 정도 나도 안다. 나의 부모님, 친구들의 부모님, 또 가끔 조언을 받으려고 나에게 연락해 오는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이 있었기에. 하지만 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들의 세계를 짐작하는 것은 대체로 상상력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나의 선택과는 전혀 관계없이, 장애인 부모를 두게 되었다면 과연 나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
아이와 대화하던 중에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의 세계는 부모나 환경, 현실 등을 초월한다는 것을. 따라서 부모가 걱정하는 이유로 아이들이 불행하거나, 부모가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들로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 p.29~30
성공에 행운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행운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을 알지는 못했다. 끈기를 갖고 포기하지 않는 것, 주위 사람들의 조언이나 참견에 흔들리지 않는 것, 다른 이들이 쓰지 않는 방법을 과감하게 쓰는 것, 최고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것. 이런 노력을 한 이에게 찾아온 행운을 보면서, 행운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 p.50
의미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과 월등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오래갈 우정을 추구하듯이, 오랫동안 자산을 투자할 만한 기업에 초점을 둬야 한다. 아주 많은 사람과 절친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투자할 때도 너무 많은 기업을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도 없다. 또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는 삶의 폭풍처럼, 기업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 p.75
바람이 불까 두려워하는 촛불보다는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는 불이 되어야 한다. 나를 무너뜨릴 만한 바람을 만나야만 견고하게 세상을 살아갈 정신력의 근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p.80
살다 보면 세상과 타협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란 생각을 하지만, 결국 나의 이익이나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과 행복 등을 위한 선택을 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허락할 수 없는 타협의 경계선은 있어야 한다. 경계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변치 않는 소신 외에 두 가지가 더 있어야 하겠다. 현실의 흐름을 따라가는 삶 속에서도 나의 타협이 불가능한 경계선을 알아볼 판단력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경계선을 넘지 않는 선택을 실행할 용기도 필요하다. 많은 ‘좋아요’ 반응을 얻어 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허락되는 듯한 오늘날, 이 판단력과 용기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닐까 싶다.
--- p.119
우리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씁쓸한 기억들,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았던 사람이 애인이었든 친구였든 부모나 형제였든 그런 과거의 기억은 현재 우리의 삶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그 씁쓸함을 내려놓아야 하고 그러려면 우리는 기억 속 그 사람을, 혹은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를 위해서, 또 내가 지금 사랑하는 나의 사람을 위해서.
--- p.127
우리는 대개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너는 나하고는 달라.”라는 뉘앙스의 말과 행동에서는 더더욱. 다른 직원이 당연히 문을 열어 줄 거라고 기대하며 문 앞에만 가면 항상 멈춰 서는 상사, 무릎 꿇는 사과를 강요하는 고객이나 매니저, 동네에 들어오는 특수학교 반대 데모에 앞장서는 사람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정당하지 않은 상황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끼는 동시에, 수치심도 느낀다는 사실이다. 무례한 상사의 기대치가 잘못된 것인데 내가 상사처럼 성공하지 못했다고 속상해한다. 고객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의 인격과 존엄을 짓밟는 갑질이 잘못인데도 부유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한다.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로 데모를 하는 이들의 태도가 잘못되었는데, 장애 아동을 낳은 부모로서 죄책감을 느낀다.
--- p.132
장애물을 피해 간다, 다른 길로 돌아간다는 표현보다 그것을 디딤돌로 만든다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삶의 여행을 더 의미 있게 해 준 지침이 되었다. 길이 사라졌다고 해서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고, 틀림없이 찾아보면 다른 길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로 했다.
---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