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편해요?”
익히 아는 목소리였다.
혜수는 갑작스럽게 훅을 맞은 기분이었으나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가볍게 옆을 돌아보았다.
“불편하진 않은데 반갑지도 않아요.”
한성은 잠시 무표정으로 혜수를 바라보다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저 웃음, 네 속이 다 보인다는 듯한 웃음. 혜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불편해하는 티가 너무 나는데.”
혜수는 그에게서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오만함을 느꼈지만,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는 것으로 참아 냈다.
“아니라고. 뭐 이렇게 사람이 여전해. 본인이 되게 영향력 있는 줄 알아.”
“사돈, 지금 반말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혜수는 참지 못하고 미간을 좁히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하. 네가 먼저 반말했잖아, 요.”
그러자 한성은 두 눈을 내려 보며 울상을 지었다.
“난 혼잣말한 건데.”
그러고는 다시 표정을 고쳐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 지금도.”
그 말을 끝으로 언제 음식을 담았는지 이미 가득 찬 접시를 들고 자리로 가 버리는 한성이었다. 혜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놀리고 있다. 이한성은 분명히 그를 불편해하는 그녀를 놀리고 있었다. 혜수는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톡 까놓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과 과거의 불편했던 진실을 이런 그와 함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하는 복잡한 심사에 한숨이 나왔다.
(중략)
“나 들으라고 한 얘기죠?”
한성의 말에 혜수는 돌아볼 생각이 없던 그를 돌아봐야 했다. 원래 모든 사람의 속을 저렇게 잘 읽는지, 아니면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여전한 유혜수라 또 여전히 잘 읽히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맞다. 현수와 둘이 있을 때 해도 될 이야기를 굳이 한성 앞에서 한 것은 우리 오빠 괜찮은 척하게 할 일 생기지 않게 하라는, 아무 실권 없는 예비 사돈의 으름장 비스름한 것이었다. 사장어른 앞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 이런 으름장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하필 이한성이라는 것은 혜수에게 참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혜수는 그래도 이런 그녀의 메시지를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그라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3년을 줄기차게 보았던 사람. 그의 어머니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는 그라서, 오빠가 가족이 될 집이 그런 사람 하나쯤 있는 곳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어쩌면 그 상견례에서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노력 좀 해 줘요. 티 안 나게. 역효과는 더더욱 안 나게. 그런 거 잘하잖아요, 원래.”
혜수의 말에 한성은 아무 답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한 혜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그를 바라보고만 있던 그녀는 이 상황에,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돈이라는 사람의 얼굴에서 자신이 뭘 찾고 있는 건지 순간 꿈에서 깨듯 정신이 들었다. 눈빛을 바로 세운 그녀는 자신의 감상이나 감정을 배제하고 그가 자신에게 보내는 시선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뚫어질 듯 보는 것도 아니고, 넋 놓고 보는 것도 아닌 그의 묘한 시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만 더 집중해서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내 그가 입을 열자 흐트러지고 말았다.
“나 원래 다른 사람 일에 별 관심 없는데. 진짜 기억력이 안 좋아졌나 보네.”
그 말만 아니었으면 혜수는 그의 눈빛이 어딘가 조금은 애틋하다고, 어쩐지 아까운 것을 보고 있는 듯한 눈빛이라고 오해할 뻔했다. 그 와중에도 그가 그 뒤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보는 것에는 한 치의 변화도 주지 않았기에.
이제 마음도 바로 세울 때였다. 5년이 지나 이제 와 새삼 아련하게 그녀를 바라볼 마음이었다면 그들의 끝이 그런 모양새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해는 끊어 냈으나 뭐라고 되받아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네 가족 일이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지만 가족의 일, 연인의 일, 때때로 그 자신의 일에조차 무관심했던 그였기에, 그런 그를 탓하는 정성은 이미 오래 전 갖다 버린 그녀였기에 혜수는 한성에게 할 말이 없었다. 이 말밖에는.
“좋을 대로 해요, 그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