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아래에서 테니스나 풋볼을 보면서 먹는 핫도그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음식물로 변하고 만다. 먹고 있을 때는 그런 느낌을 받지 않는다. 태양과 스포츠에서 벗어날 때, 행복의 상징으로서 그 맛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것도 뇌나 혀나 위가 아니라, 온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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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를 열고 그 그림을 보았을 때, 술에 취한 나는 가재의 맛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확였는데 30년 전에 파리에 와본 적이 있다. 짧은 체재기간이었지만, 그 후 아버지는 파리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 우리집에는 아버지가 그린 파리가 가득했다. 뤽상부르 공원, 사크레쾨르, 노틀담, 에트왈, 나는 그런 것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현실의 파리에 대해서도 애착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아마도 겨울 가재를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파리는 아직도 아버지 같은 무명 청년을 끌어당기는 힘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트렁크, 얼굴이 동그란 그 여자의 아버지 아니면 할아버지의 것이고, 최근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제멋대로 상상해 보았다. 그는 화가 지망생이었고, 퐁네프를 주로 그렸다, 그는 화가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게 살면서 미소를 잃지 않도록 그녀에게 가르쳤다, 젊은 날의 추억이 담긴 트렁크를 센 강에 버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또는 죽은 그를 사랑했던 얼굴이 동그란 그녀가 추억이 어린 트렁크를 그냥 버릴 수 없어 센 강에 떠내려보내고자 했다....그런 이야기를 하자 아일랜드인 친구는 그런 로맨티시즘을 빨리 버리지 않으면 영원히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없어, 하고 웃었지만, 트렁크의 주인이 겨울 가재를 먹어보지 못했을 거라는 나의 의견을 대해서만은 동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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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는 입과 혀와 목을 자극하면서, 매끄럽게 내장 전체를 뜨겁게 달군다. 양의 하얀 뇌는 혀 위에서 서늘하게 느껴진다. 여자의 새끼발가라락 크기의 미끌미끌한 덩어리, 그 표면의 엷은 막을 씹으면, 질 좋은 올리브 오일과 농축된 밀크를.....그것이 반복된다. 먹으면서 다른 어떤 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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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코라고 아세요?'
'싱코? 오싱코(소금에 절인 채소)가 아니고? 아, 그거 말이군요, 전어, 아주 작은 전어.'
'맛있어요?'
'좋아하죠, 등 푸른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좋아해요.'
'딸애가 딱 한번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 한적 있어요. 그 남자는, 남쪽 섬에서, 일본을 떠나, 죽기 전에 생선초밥 세 개를 먹으라고 한다면, 그 싱코와, 주토로(참치 뱃살-옮김이)와 장어를 먹겠다고 했대요. 선생님이라면 뭘 드시겠어요? 나는 다이토로(참치 뱃살, 주토로와 다른 부위-옮긴이)와 새우와 연어 알을 먹겠어요. 동생은 달걀과 다이토로와 성게 알을 먹겠대요. 싱코와 주토로와 장어를 먹겠다는 남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아시겠어요?'
'글쎄요. 나라면 역시 주토로와 장어와, 흠, 싱코라니 의외로 예민한 사람일지 모르겠군요, 그 남자 말입니다. 젊은이가 아닐 겁니다. 싱코가 나오는 가게는 의외로 비싸요. 질 좋은 주토로도 고급이죠. 생선초밥을 자주 먹는 남자일 겁니다. 나이가 들었고, 부자일 겁니다. 식도락도 상당한 수준이니까요.'
'역시 그랬군요, 본 적도 없는 고급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요, 그 나쁜 놈이 데리고 놀 작정으로…….'
딸 이름과, 사진을 받고, 그날 밤은 헤어졌다.
--- pp.223-224
-모든 예술의 정점에는 모차르트가 있다.
명함 크기 반만한 조갯살 다섯조각이 끝이 말려 올라간 모습으로 접시에 놓여있다. 처음 한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었을 때, 건너편 신사와 눈이 마주쳤다. ~하얀 조갯살은 입 안을 슬쩍 건드리면서 이빨과 혀에 부딪쳐 부서지더니 침과 섞여 입 안에서 빙글 한 바퀴 돌고는 목구멍으로 비끄러져 내렸다. 소스는 새우 대가리를 짓이겨 만든 짙은 갈색의 액체로 맛이 꽤 진했다. 그러나 조갯살이 혀에 닿는 순간, 입 전체에서 새우 소스의 맛은 사라져 버린다.
웨루크는 다른 어떤 맛과도 닮지 않았다. 상어 지느러미나 전복처럼 내부에 건조된 바다를 감춘 그런 맛도 아니고, 새나 사슴처럼 피 냄새도 나지 않고, 자라처럼 생명 그 자체에서 풍겨나는 비린내도 없고, 복어의 흰 살이나 캐비아처럼 생식체계에서 벗어난 짙은 맛도 없다. 또한 웨루크는 몸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새로운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목구멍에 남아 있던 상어 지느러미나 전복이나 비둘기나 개구리나 제비집의 향기와 맛은 모두 사라져버린다. 웨루크는 웨루크 그 자체의 맛도 지워버리는 것이다.
--- p.166
난, 정말 복잡한 심경이었어요. 그렇지만,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수프를 먹고, 이것과 똑같은, 토마토와 잉어로 만든 수프, 겨울이었죠. 너무 따뜻하고 맛있어서, 그만 친구의 일을 잊었죠, 일순간에, 전부 잊어버렸어요. 그 친구의 고민, 고뇌, 잊어버렸어요. 그건, 좀 두려운 일이 아닐까요? 잊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쩔 수 없잖아요, 하고 디자이너가 말했고, 나도 동의했다.
--- p. 208
나는 해외에서 많은 돈을 낭비했다. 유럽이 주된 무대였는데, 각국에서 최고의 호텔에 머물렀고, 최고의 스위트 룸에서 사치스럽고 진귀한 음식을 맛보았다. 나는 그때까지 인생에서 최고의 낭비를 즐겼다. 이 요리소설은 바로 그때 씌어진 것이다.
거품이 가라앉고 불황에 빠져든 현재, 나는 그때의 낭비벽을 과연 그만두었을까? 아니다. 아직도 나는 전과 같은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매일 호화로운 호텔에 머물렀고, 리무진을 타고 스타디움을 갔고,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을 수도 없이 제패하고, 이동할 때는 헬리콥터를 이용했다. 돈은, 써버리면, 거품 따위 일어날 수가 없다. 더 벌자, 더 저축하자, 라는 서글픈 농경민적 가치관이 거품경제와 디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것이다. 수렵민은 낭비밖에 모른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낭비는 미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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