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난 나 자신을 지워버리려 애써. 분홍색의 커다랗고 부드러운 비누 지우개를 상상하는 거야. 그게 앞뒤로 움직이는 거지. 처음엔 내 발가락에서 시작해서 앞뒤로 왔다갔다 움직이면 쓱, 내 발가락이 없어져. 그리고 나서 내 발 그리고는 발목, 근데 그건 쉬운편이지. 어려운건 내 감각들을 지우는거야.내 눈, 내 코, 내 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 곳은 내 뇌지. 내 생각, 기억들, 내 머리안에 들어있는 모든 목소리들. 내 생각을 지우는 거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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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워진 거야. 사라진 거라구. 난 무인거지. 그렇게 되면 세상은 비어있는 그릇에 흘러 들어가는 물처럼 자유롭게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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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사라진거지. 내가 우주고 우주가 나고, 난 한개의 돌, 한개의 선인장 가시인거야. 난 빗물이지
--- pp.128-129
달빛이 비치는 동안 나는 평상시와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달빛이 눈처럼 하얀 내 침대 시트 위에서 사막에서 기어들어온 검은 고양이처럼 가르랑거릴 때 달빛이 주는 느낌, 마치 낮의 반대가 아닌 그 이면, 낮이 갖고 있는 은밀한 면고도 같은 그 느낌이 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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