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가 말한 대로, “권력은 행위 주체의 행동이 기입되어 있는 가능성의 자장에서 행사된다. 즉, 권력은 행위 주체를 독려하고, 행위 주체에 생각을 불어넣고, 행위 주체의 생각을 전환시키고, 행위 주체를 가뿐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고, 행위 주체의 행동반경을 넓히거나 제한하고, 행위 주체를 다소 그럴싸하게 만든다. 이도 저도 아닌 경우에 행위 주체의 행동을 전적으로 강요하거나 방해하려고 권력이 행사되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하나 또는 여러 행위 주체에게 영향을 끼치는 방법이며, 이들이 행위 하거나 행위 할 수 있는 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30쪽)

통치성 연구가 관심을 두는 부분은 노동시장에서의 변화보다는 다른 영역들에서의 기업가적 요구와 기업가적 자기 해석의 확산, 그리고 특히 개인이 통치되거나 스스로를 통치하도록 북돋으려고 쓰는 정치 전략과 정신공학(Psychotechnologien)이다. 여기서 기업가정신은 어떤 특수한 조직 형태가 아닌 회사, 공공기관, 사설 연맹과 이 안에 있는 인간, 결국엔 온갖 것과 모든 생활상과 관련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활동 양식을 뜻한다.(75쪽)

노동력의 구매자와 판매자는 형식적으로는 자유롭고 동등한 계약 파트너로 노동시장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은 공장 문 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노동계약을 맺은 사람은 노동시간 동안 그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사람의 명령에 굴복했다. 하지만 오늘날엔 생산 영역과 유통 영역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며, 공장 역시 더는 권위와 규율이 아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즉 계약 형식으로 “통치”되어야 한다.(156쪽)

이런 의미에서 시장 지향은 철저한 품질 지향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반대도 그러하기에) 기업가적 행위는 품질관리와 같은 뜻이다.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적 혁신이나 (카슨이 말한) 이익을 최적화하는 자원 재할당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과 다를 바 없는, 사물의 품질이라는 범주가 실제로 어떻게 채워질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은 구체적인 경우를 위해서만 대답될 수 있다. (중략) 바로 향상 가능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품질관리이며, 그것이야말로 기업가를 기업가로 만든다. (252쪽)

자기계발서를 뜯어보기 <br/>‘자기계발’은 서점에서 한 분야로 인정받는다. 경제경영서와도 차별되는 자기계발서는 효율적인 시간 계획이나 노동 조직 기술, 스트레스 극복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요즘의 자기계발서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인간의 생활양식을 기업 조직에 맞춰 사고할 것을 강조한다. 자기 안에 있는 ‘기업가적 자아’를 일깨우라는 메시지로 가득한 자기계발서의 특징은 개인과 기업을 나란히 두는 것이다. 이 책들은 개인의 인성조차 ‘기업가적’일 것을 요청한다. 개인이 생산품이자 생산자이고, 상사이자 부하직원이기를, 그리고 납품자이자 고객이기를 바란다. 거대한 기업을 움직이는 부품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 기업가로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자기 안의 서로 다른 모습은 하나의 강력한 팀을 이루는 기업가적 정체성으로 거듭나는 원동력이라고도 말한다. <br/><br/>“기업가처럼 행동하라”는 정언명령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br/> 이 책의 주제는 “‘기업가처럼 행동하라’는 준칙은 현대의 정언명령이다”라는 말에서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저자인 울리히 브뢰클링은 현시대의 인간은 점점 더 기업가처럼 행동하길 요구받는다고 진단하고 미셸 푸코의 ‘통치성’ 개념과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적 조건을 토대로 그 원인과 실상을 추적해나간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인간을 통치하는가? 이 시대의 인간은 어떤 이상적 인간상에 맞춰 자신의 자아를 형성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인간을 이 인간상에 도달하게끔 만드는가? 등이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지고 또 답하고자 하는 질문들이다. <br/><br/>∥신간 출간의의(출판사 서평) <br/><br/>자기계발서가 범람하자 자기계발 담론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라는 짐짓 철학적인 실존의 문제가 ‘어떤 사람으로 살게 할 것인가’라는 통치의 문제로 전환된 현실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자기계발에 힘쓰는 사람은 여전히 계발이 모자라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계발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은 자신만 뒤처진다는 걱정 때문에 불안하다. 이 책은 현대인의 이 같은 불안이 잘 짜인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프로그램의 결과이며, 그 불안을 계속 자극함으로써 지금의 사회가 작동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br/>이 책의 독해는 쉽지 않다. 이 책을 번역한 김주호가 지적했듯 “저자 브뢰클링은 경제학, 경영학, 철학, 심리학과 같은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논의를 진행하며, 다양한 이론과 개념을 언급하고 빈번히 원문을 인용한다. 간결하게 쓰기보다 부문장을 통해 부연하여 충분히 설명하는 편이다. 내용이 이론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면 이 시대의 기저에 놓인 통치성의 맥락을 누구보다 깊게 파고들 수 있다. <br/>“자기 자신의 기업가로서 개인들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생의 연관들 속에서 호명되거나 호명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업가로의 호명의 자장에 맞춤으로써 근본적인 의미에서 이들이 일상에서 사회적 인정을 얻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개인들은 이로써 사회적 삶에 참여할 수 있다. 계속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에 의해 움직이고, 경쟁 사회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의해 추동되면서 개개인은 기업가적 호명을 항상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는 현실을 함께 만들어나간다.” 브뢰클링이 말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br/>이 책은 인류학, 심리학, 경제학의 관점을 모두 동원하여 기업가로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어렴풋이 혹은 뚜렷이 보여준다. 끊임없이 창조하고 혁신할 것을 주문하는 사회에는 떨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기업가적 자장이 고르고 넓게 퍼져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결국 저자 브뢰클링은 통치 프로그램은 이미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일종의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