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끌어내라고 명령하실 생각이십니까?”
록산느는 아르노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물었다. 그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폐하.”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일단 여기 있는 이자들은, 상대가 누구든 제 몸에 손을 대는 순간 칼을 뽑을 것이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황좌를 둘러싼 기사들은 전원이 록산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넬로페에게 했던 것처럼 검을 뽑아 겨눈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록산느에게 손끝 하나라도 대면 튀어 나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황실 기사단조차도 손을 쓸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요.”
록산느가 다시 말했다. 아르노아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게 문제지.
홀을 빙 둘러싸다시피 한 1, 2, 3기사단의 기사들은, 아직 아르노아에게 충성할 생각이 없었다.
무훈이 없는, 즉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검 한 번 잡아 본 적 없는 것 같은 황제는 기사들의 존경을 사기 어렵다. 강한 자를 우러러보는 그들은, 전설적인 기사이자 전장의 사령관인 록산느와 아르노아 중에서는 당연히 록산느에게 더 마음을 주고 있었다.
아르노아는 곁눈으로 그들을 한 번 바라보았다.
황제 앞에서 이 정도로 불순한 사람을 본다면, 이미 손은 검을 잡고 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불편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아예 두 사람의 충돌이 흥미롭다는 듯 여유로운 자세로 이쪽을 볼 뿐.
오직 벤트 남작의 동생이 이끄는 4기사단만이 긴장한 채 아르노아의 명령을 기다렸지만, 그들만으로 록산느를 쫓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뭐…… 그렇게 저희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한들, 폐하께서는 무척 곤란해지시겠지요.”
록산느가 얄미운 말투로 덧붙였다. 아르노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가 작정하고 이 자리에서 반역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아르노아가 사람을 동원해 그녀를 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기사단이 정 움직이지 않는다면 리켈 공작도 있었고, 그마저도 안 될 상황이라면 벨도 황궁 안에 있었으니까. 다만 이 상황을 무력으로 해결하면, 그 후의 일은 복잡해질 것이다.
많은 귀족들과 제국민들은 여전히 아르노아를 전과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다.
무능했던 선대 황제의 무능한 여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 황제.
그런 그녀가, 표면상으로는 전쟁 영웅이나 다름없는 록산느의 몸에 손을 댄다면, 온갖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왜곡되고 커질 터.
유능한 대공녀를 질투한 아르노아와 그녀에게 핍박받는 록산느.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대공녀를 위협해 상처를 입힌 황제.
소문이 잘못 퍼진다면, 즉위 초기에 아직 불안한 아르노아의 평판도, 명예도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자, 어서 하실 말씀을 다 하세요, 폐하.”
록산느가 다 이겼다는 듯 독촉했다.
“제국군의 노고를 치하하여 오늘은 제게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날 건지, 아니면 여기서 제 몸에 손을 대 개싸움을 벌일 건지.”
아르노아는 깊이 심호흡을 하고는 대답했다.
“……대공녀의 몸에 손을 댈 수는 없지.”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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