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래요,
봄이... 봄이 왔다구요.
꽃소식을 전해주는 9시 뉴스,
올 봄 패션 아이템들을 열심히 소개하는 케이블 TV,
결혼소식을 알려오는 친구의 청첩장,
모두 내게 봄이 왔다고 말하죠.
그런데, 난 아직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어리석게, 안타깝게 겨울을 끌어안고 있어요.
입춘도 지나고, 경칩도 지났는데,
혼자만 겨울 속에 갇혀서 걸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침대 옆엔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책상 유리 밑엔 크리스마스카드가 끼여 있어요.
그리고 아직 포장을 뜯지도 못한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이 탁자 위에 놓여 있습니다.
불과 몇 달 전, 우리가 함께 보낸 마지막 크리스마스이브에
그가 나에게 해준 선물들이에요.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고,
그다음 날, 그는 내게 긴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미안해... 어떤 말을 해도 다 변명이 될 거야.
‘친구가 되자’고도 안 할게.
솔직하게, 네가 미련 같은 것 같지 않도록, 내 마음 그대로 말할게.
이제 널 봐도 가슴 설레지 않아. 이제 널 봐도 뽀뽀하고 싶지 않아.
사랑이 증발해버렸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어.
그래도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아.
네 꿈대로 멋진 바리스타가 되길 바란다.]
바리스타가 나온 ‘커피프린스 1호점’이라는 드라마 때문에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니에요.
그 전부터 무작정 커피가 좋아서, 그냥 그 사람처럼 좋아서...
바리스타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아직은 학원 다니면서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정도지만
언젠가는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잃어버린 사랑을 잠시 되찾아주는 추억이 되는, 그런 커피를 만들 거예요.
그러면, 내게도 봄이 오겠죠.
그를 추억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봄이 말이에요.
하지만 아직은 지독하게 추운 겨울일 뿐입니다.
사랑이... 사랑에게 말합니다.
잊으라고,
잊지 못하는 사람만 아플 뿐이라고...
--- sweet love...001 커피 만드는 여자 중에서
“첫인상이 참 좋으세요.”
그녀도 처음 날 봤을 때 그랬었죠.
“첫인상이 참 좋아요...”
앞에 나와 있는 여자 분 얼굴 위로 그녀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머릿속에 누군가 오버랩 장치를 해놓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아직 주문도 하지 않았네요.
“죄송해요. 제가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고... 뭐 드실래요?”
“그냥... 오늘의 커피 마실게요.”
“문자 온 것 같은데 확인해보세요. 전 커피 주문하고 올게요.”
오.늘.의.커.피.
그녀도 여기에 오면 늘 오늘의 커피를 마시곤 했죠.
그녀와 헤어진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어요.
그런데 희철이가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해야 된다면서
자기 맘대로 소개팅을 잡아버렸습니다.
그것도 그녀와 내가 단골로 드나들던 이곳에다 말이에요.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기왕이면 잔인하게 잊으라나요?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고 서 있는데,
주문대 안쪽에서 컵 닦는 남자가 커피 만드는 여자에게 말을 거네요.
“오늘은 학원 안 가요?”
“오늘부터 오전 타임으로 바꿨어요.
낮에 집에만 있으니까 우울해서...”
그녀가 또 오버랩되고 있습니다.
같이 영어 학원 다니던 생각이 나네요.
아침잠이 많은 탓에 그녀가 늘 모닝콜을 해줬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여자랑 있으니까 그녀 생각만 더 나요.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어요.
만약 이 여자 분이 내 연락을 기다리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저기 사실은... 여자친구랑 헤어진 지가 얼마 안 됐어요. 그래서...”
“그래요? 저도 그런데... 차였어요? 찼어요? 전 차였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차였다고 말하면서
눈에는 금세 쓸쓸함이 고였습니다.
왜 그 남자는, 이렇게 착하게 웃는 여자를 떠났을까요.
그리고 그녀는 왜 날 떠났을까요.
떠나는 사람들은, 왜 떠나는 걸까요.
사랑이... 사랑에게 말합니다.
생각을 베어내려고 애쓰지 말라고,
잊으려고 발버둥칠수록 그리움만 더 꽉 찬다고...
--- sweet love...002 소개팅 나간 남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