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신 이난나께서 말씀하신다.
너를 사랑하는 두 명의 사내가 보인다.
네가 사랑하는 두 명의 사내가 보인다.
너를 죽이는 두 명의 사내가 보인다.
네가 죽이는 두 명의 사내가 보인다.
……역시 받지 않는 게 좋겠어.
저는 할머니 신관님의 신탁이 더 길게 이어지기 전에 얼른 새로운 말로 꼬리를 달기로 했어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두 명인 것보다는 한 명인 게 좋고, 죽이는 것보다는 살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할머니처럼 몸을 앞뒤 좌우로 건들건들 흔들면서 홍알홍알 말했어요.
용감하고 씩씩한 레니에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사랑하는 한 명의 사내가 보인다.
나를 사랑하는 한 명의 사내가 보인다.
내가 살리는 한 명의 사내가 보인다.
나를 살리는 한 명의 사내가 보인다.
할머니 신관님은 제 엉터리 예언을 듣고는 눈을 빼끔 뜨시더니 고개를 흔들흔들, 혀를 끌끌하셨어요. 네깟 년이 감히 위대한 여신님의 신탁에 딴지를 걸어? 하는 속의 목소리가 다 들렸어요.
저는 쪼끔 부아도 나고, 쪼끔 겁도 났어요. 하지만 저는 노예라 함부로 화를 내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얼른 배시시 웃으며 말씀드렸지요.
“제가 나중에 어른이 돼서 어느 쪽이 맞았나 말씀드리러 올게요.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에구…… 되바라진 것. 궁금하긴 하다만 내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모르겠구나.”
할머니는 여전히 반쯤은 미혼약에 잠긴 목소리로 중얼중얼하다가 다시 햇볕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요. 저는 머쓱해져서 헤헤 웃고는 다시 담벼락에 등을 대고 눈을 감았지요.
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앉아 오랫동안 햇볕을 쬐었어요.
--- 본문 중에서
레니에의 가장 큰 장점은 움직임이 빠르다는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이 무지막지한 데다 움직임 역시 레니에만큼이나 빠르고 기척조차 없었다. 감지되는 것은, 오로지 살기. 온몸을 시커멓게 감아 오르는 살기의 방향뿐이었다.
살기조차 느끼지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나간 세데크, 살기만으로 오줌을 지리며 떨던 키시. 한 부족을 몰살하고 단숨에 북국을 통일한 피의 군주, 소금성의 루갈 쿤.
그렇게 순박하고 순진한 웃음을 짓던 소년은, 나를 아프게 할까 봐 그렇게 조심스럽게 내 몸을 매만지며 손을 떨던 소년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 이번 임무만 완수하고 오면, 네 가장 간절한 염원을 이루어 주겠다.
기치다 님, 제 간절한 염원이 뭔지는 정말 알고 계세요?
- 이번에 목숨을 거둬 와야 할 자는.
이자의 목숨을 거둘 기회는 지금 한 번뿐인데.
- 분열돼 있던 열두 개 부족을 통일한 북국의 왕, 쿤이다.
명령이니 최선을 다해 따르겠지만…….
- 내 마지막 명령이다. 무사히 돌아오너라, 레니에.
……저는 무사히 못 돌아갈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도끼가 옆구리를 크게 베며 돌아왔다. 온몸에서 흉흉하게 뻗치는 살의로 숨이 막힌다. 레니에는 그것을 피하는 대신 단검을 쥐고 그대로 치고 들어갔다. 허리가 동강 나는 순간, 내 손에 쥔 단검은 쿤 네 목에 꽂힐 것이다.
북국의 아름다운 왕비는, 질투가 심하다던 내실의 여자는 네 죽음을 슬퍼할까.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나는 너의 첫 번째 여자였고, 너는 내 첫 번째이자 유일한 사내였다. 이런 사람들끼리 서로 죽음을 확인하고 명부로 향하는 여행길의 동반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의 손을 잡아끌고 에레쉬키갈 앞에 간다면 그것도 좋겠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저울을 맞추네 어쩌네 하면서 너를 구할 필요도 없었는데. 그동안 나는 다섯 명의 생명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길 정도가 됐거든.
예전에 내가 너를 찾아가면 고통 없이 단번에 죽여 달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 네 눈동자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는데.
네 눈, 생각보다 예쁘다, 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