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그리던 그림이 일이 되고, 생계가 되면서 힘들고 괴로웠던 적이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함, 건강의 상함, 클라이언트의 불합리한 행동들로 멘탈이 나갔다. 그래도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어떨 땐 가 창작을 하는 건지 단순노동을 하는 기계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일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막연함은 불안감으로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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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프리랜서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장소의 구애 없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멋진 직업인 것 같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을까?
아니다, 내 경우 20퍼센트 정도 맞는 말이라고 할까. 포트폴리오 관리, 클라이언트와의 협상, 스케줄 및 건강 관리, 마감, 마감, 마감 등.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일을 스스로 직접 처리하고 책임져야 하며, 책임을 회피하게 되면 일이 없어진다. 일이 없는 프리랜서는 사실상 백수와 다를 바 없다. 수입도 고정적이지 않고 4대 보험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게 다가 주로 혼자 일하기 때문에 외로움과의 싸움도 무시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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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참고 있었다. 불안정한 수입과 미래, 이를 떨쳐내기 위해 맹목적으로 감당했던 작업량,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 8~9년을 미친 듯이 일했어도 남는 게 없는 커리어, 돈과 명예에 대한 집착과 그로 인해 시들어버린 그림에 대한 순수한 욕심. 이 모든 게 나도 모르는 사이 곪아 터져버린 것이다. 번아웃이었을까, 공황장애였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애써 계약한 일들을 전부 파기하고 세상 밖으로 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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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추석, 언제나처럼 엄마의 레시피를 들으며 형은 떡국을,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육회를, 아버지는 시장에서 사온 반찬을 준비해 함께 밥을 먹었다. 그때 엄마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눈이 아주 흐릿하게는 보여서 장애 2등급 판정이었는데 내가 따져서 1등급이 됐어. 혜택이 조금 더 많아질 거야.”라며 좋아하셨다. 나와 형과 아버지는 별말하지 않고 차려진 음식을 먹었다. 나는 “그게 좋아할 일이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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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인원은 네다섯 명. 자연스럽게 근처 호프집으로 향한다. 다양한 안주를 또다시 뜯고 맛보며 배를 채운다. 물론 술은 안 마신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제기차기에 돌입한다. 룰은 간단하다. 제일 많이 찬 사람을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2~5위는 다시 승부를 겨루고 또 거기서 이긴 사람을 집에 모셔다드리는 자존심이 상하면서 승부욕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안심 귀가 서비스 게임’ 되겠다. 거의가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가능한 게임인데, 그렇기 때문에 혹시 게임 중간에 도망갈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긴 사람 집에 도착하면 단체 사진을 찍고 채팅방에 올려야 한다. 아주 치밀하고 잔인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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