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강남화는 빠른 속도로 지속되고 있다. 종로의 풍경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풍자적인 것은 까만 대리석으로 된 기념비 같은 안내판이 많다는 점인데, 그것들은 거기가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간 역사적 건축물이 있던 자리임을 보여준다. 보신각 맞은편의 화신백화점(일제 강점기, 가장 크고 유명한 한국인 소유 백화점이었지만 얼마 전에 삼성에서 지은 거대한 유리 및 철골 구조의 종로타워가 들어섰다), 인사동 북서쪽 모퉁이의 죽동궁(순조의 장녀 명온 공주가 기거하던 곳인데, 지금은 1층에 맥도널드, 지하에 ‘미시 클럽’이 자리한 14층짜리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버티고 있다), 종로구청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수진궁터(또 다른 주차장과 또 다른 스타벅스가 들어섰다)에 이르기까지, 종로 거리 여기저기에는 이런 기념비 수백 개가 흩어져 있다. 볼 때마다 묘비명이 연상되기는 하지만 다행히 크기가 별로 크지가 않기 때문에, 서울 시민들은 대한민국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수도 한복판에 거대한 노상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심히 지나다닌다. 멋있지도, 맛있지도 않은 역사 따위를 누가 거들떠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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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한민족에게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국가가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한민족을 완벽하게 대변할 단일한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심지어는 한민족이 한 번도 진정한 의미의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내세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한민족을 지배했고, 조선 왕조 때는 왕국(royal state)이 양반 엘리트의 자발적 도움으로 한민족을 수탈하고 억압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그토록 강렬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한국의 민족주의가 21세기까지도 온전히 실현된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오늘날 찾아볼 수 있는 한국인의 민족적 정체성은 북한과 남한 사이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 사이라는 이중의 틈새 혹은 격차에 의해 분열된다. 이것은 가장 사소한 자극이나 도발에도 민감하게(때로는 고통스럽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만성적인 상처로, 흉터가 되어 한 덩어리로 합쳐지기 전까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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