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의 저자 토드 맹굼 교수는 매우 보수적인 신앙 전통에서 성장해, 세대주의 신학으로 유명한 달라스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따라서 그는 어느 한쪽을 무조건 완전히 배격하고 나머지 하나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신학자가 아니다. 언약주의, 혹은 개혁주의 토대에 견고히 서 있는 가운데, 세대주의를 그 뿌리부터 철저히 조사하고, 세대주의 본질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연구한 보기 드문 신학자다. 그는 본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대주의와 언약주의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서로 엇나가게 되었고, 현격한 차이점을 드러내게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양자가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도 조사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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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즉, 보수적인 장로교의 “유기적 복합체”의 이념이 1920년대의 현대주의자/근본주의자 논쟁으로 도전받고, 그래서 명확해진 것처럼, 마찬가지로 1936 - 38년의 논쟁들 역시 보수적인 장로교인의 “기본적 신념과 목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의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 결과 그들의 기본적인 신념은 유사했지만, 그들의 목표는 상당히 달랐음이 드러났다. 이 목표들이 발전함에 따라, 차이는 결국 두 개의 보수주의 과제로 나눠질 만큼 현저해졌고, 이 두 과제는 갈라서서 그들 자체의 경로를 추구했다.
이 두 과제의 분리를 유발한 상황들은 그 당시 예외적인 시점에 서로 연결된 확신과 헌신과 개성의 집합체에 독특하고도 특별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 분열을 좀 더 초기에 있었던 논쟁으로 퇴보된 것으로 특징짓는 설명을 배척한다(지나치게 환원주의적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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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 기관에서 해야 할 성경 교육에 대한 결의안]
우리 모든 사역자와 장로들이 안수식 때 따르기로 서약하는 신앙고백과 대요리 문답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즉, 구원 계시를 “전적으로 글로 기록되도록” 전달해,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바로 그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영감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뛰어난 보살핌과 섭리로 모든 세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 성령을 통해 “성경의 모든 기록자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오류 없이 기록하도록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원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말씀에 계시된 것은 무엇이든지 옳은 것으로 믿도록” 영감을 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의 권위가 성경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알라배마노회는 노회의 지원을 받는 대여섯 교육 기관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즉, 이 기관들에서 가르치는 교육은 성경의 대여섯 책의 진정성을 주장할 것을 확실히 하고, 성경 대부분을 “사기”와 “기만”으로 보는 고등비평의 견해를 반박할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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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보고서는 제한적으로 “오직 중요한 교리들”만을 고려했지만, 1944년 보고서는 그 포커스를 훨씬 더 좁혀 오직 두 개의 폭넓은 교리적 불일치에만 집중했다. 이 요지들 가운데 후자는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고백적 해석에서 벗어난 세대주의적 일탈”로서, 이것은 반 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으로 기록되었다. 이는 1944년 보고서 대부분이 “장로교회의 언약신학에서 벗어난 세대주의의 근본적 일탈”이라는 고백적 일탈의 첫 번째 내용을 분명히 하는 데에 할애되었음을 의미한다.
1944년 보고서 역시 세대주의적 입장을 알아내려면 어떤 자료들과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더 신경 썼다. 1943년 보고서 중 “질문에 답하는 데이터”라는 섹션은 제거되었는데, 그 섹션은 어떤 교리가 조사해야 할 만큼 “중요한”지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된 기준을 설명한 섹션이었다. 또한, 다양한 세대주의 작가들을 인용하는 방대한 각주도 삭제되었다.
1944년 보고서의 방법론을 고려할 때, 이 모든 것은 불필요했다. 1944년 보고서는 “세대”와 “세대주의”라는 용어를 정의하는(스코필드와 체이퍼의 인용문을 사용해) 간략한 섹션 뒤에, 다음과 같이 단도직입적으로 진술했다.
“그런 세대주의적 가르침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상세히 설명하지만, 우리는 인용문을 세대주의자 가운데 가장 저명한 두 명의 글만으로 한정할 것이다. 그 두 사람은 C.I, 스코필드 박사(특히 스코필드 주석 성경에 있는 특정한 각주들에서 발견되는 스코필드)와 이 주제에 대해 방대한 글을 쓴 L.S. 체이퍼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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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론: 오늘날 과거의 단층선 위에 세우는 것은 안전한가?
우리의 연구는 “세대주의자들”과 “언약신학자들” 사이의 오래된 경계선이 부적합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이런 인식으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확실히, ‘세대주의자 - 언약신학의 논쟁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취하는 사람들과 성경을 “풍유화하거나” “영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졌다는 초기 세대주의자들의 낭설’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언약신학자들은 그들의 “시스템”이 논쟁의 여지가 없이 옳은 시스템으로서, 세대주의를 느리지만, 확실히 포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획일적 입장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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