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여동생은 검은 한복을, 삼촌과 사촌 오빠는 양복을 입었다. 상주 완장은 사촌 오빠가 찼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사촌 오빠가 나 대신 내 아빠의 상주가 된 것이다. 온갖 결정은 내가 내렸지만, 아빠를 보내는 예식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장례식장에서는 평생 같이 산 직계존속보다도 남자를 선호한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게 됐다.
--- p.21, 「아빠가 죽어도 상주 못 서는 딸」 중에서
아빠의 장례 후 나는 일종의 부채감과 죄책감을 반복해 겪었다.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쌓여갔지만, 쉽사리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어쩌면 문제는 내가 아니라 상업화된 장례 문화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p.32, 「애도, 잠들지 않는」 중에서
아빠가 발견되기까진 30분 정도의 공백이 있었다. 때문에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지병을 생각하면 완전히 급작스러운 사망은 아니었다. 나는 아빠의 심장이 멎는 마지막 순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멎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장면은 영영 모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빠가 극심한 고통을 겪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 것뿐이었다.
--- p.43, 「정확한 죽음을 상상하기」 중에서
출입국 도장이 한 번도 찍히지 못한 여권도 있었다. 몇십 년 전에 만들어진 여권이었다. 한 번도 한국을 떠난 적 없던 아빠는 어쩌다 이 여권을 만들었을까. 아빠가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있었을까. 여태껏 궁금해한 적도 없던 질문이 아빠가 떠나고서야 치솟는다. 죽은 사람의 방을 정리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사용기한이 만료된 질문과 수없이 마주하는 일.
--- p.62~63, 「죽은 자의 짐 정리」 중에서
아픈 일도 별거 아닌 것처럼 의연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 가족은 일어서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다. 하루빨리 아빠의 죽음을 잊겠다거나, 강철 체력이 되겠다는 허황된 기대나 목표 없이 그저 오늘을 걷기로 한다. 가끔은 수다를 떨면서, 가끔은 서로의 보폭을 존중한 채로 그저 조용히 축축한 오솔길을 걷는다. 우리는 멀리 볼 거니까. 그리고 우리는 함께 멀리 갈 테니까.
--- p.145, 「세 모녀, 등산을 시작하다」 중에서
존재에 대한 자존심은 나를 높은 곳으로 데려가게 도울 자양강장제가 아닌, 내가 갈림길에 설 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도와줄 삶의 방부제가 되어 줄 것이다. 잘 죽는다는 것은 죽기 직전 삶을 돌이켰을 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육체가 부패하더라도 영혼은 부패하지 않는다.
--- p.209, 「죽음에 대한 사적인 가이드라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