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빈센트의 복잡한 삶을 하나로 묶어주는 요소를 찾는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책일 것이다. 독서에 대한 사랑은 죽는 날까지 그와 함께했다. 변화 많은 삶의 시기에 따라 그의 페르소나-미술상, 설교자, 화가-가 달라지긴 했으나 그의 사랑을 이끈 것은 언제 어디서나 배우고, 이해하고, 논의하고, 최종적으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나름의 방법을 찾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욕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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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꼬박 1년 동안 이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그가 선택한 책들은 공통된 주제를 갖고 있어 그의 사고 전환을 반영한다. 빈센트는 개인적으로 미래가 불투명하고 기성 ‘종교 제도’의 ‘편견과 인습’을 철저히 거부한 시기에 믿음직하게 기댈 수 있는 ‘현시대의 복음’을 찾고 있었다[155]. 미슐레와 위고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작가들은 종교 제도와 사회 제도가 부과한 구속에서 개인을 자유롭게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열정의 권리, 행복의 권리를 찬양했고, 천재성의 발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어떤 것이라도 가차없이 비난했다. 빈센트가 새로운 도덕적 기틀을 다져 용감하게 재탄생할 수 있었던 건 그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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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졸라와 자신의 세계관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걸 알았다. 두 사람 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가혹한 현실이나 그 속에 사는 인물들을 보기 좋게 꾸미거나 이상화하지 않았다. 바로 그런 현실이 두 사람의 작품에 중심을 이뤘다. 1883년 7월 빈센트는 졸라가 예술에 관해서 쓴 에세이, 《예술의 순간》을 읽었다. 《예술의 순간》은 문학적 · 예술적 삶에 관한 졸라의 중요한 저작, 《나의 증오(Mes haines)》에 들어 있는 글이다. 이 책에서 졸라는 ‘사실주의적’이란 단어를 뛰어넘어 예술적 창조성의 중요한 일면에 대해 숙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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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학을 보여주는 최초의 뚜렷한 사례는 [성경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Bible)]이다. 캔버스는 ‘레몬 옐로 색이 추가되어’ 광채가 난다[537]. 레몬 옐로 색이 칠해진 책은 에밀 졸라의 《생의 기쁨》으로, 이로써 빈센트의 전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소설이 색을 입고 등장했다. 이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그건 즐거운 소설이 아니라 정반대로 졸라의 비관적인 작품에 속하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예술이 힘든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영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졸라의 방식에 완벽히 공감했으며, 이 프랑스 소설가야말로 근대인에게 삶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진정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 p.86
그해 가을에 빈센트는 위에서 언급한 종류의 소설책들을 쌓아놓고 유화 두 점을 그렸다(7쪽과 112쪽을 보라). 책은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고, 제목은 읽을 수 없다. 두 번째 그림이 앞서 그린 습작보다 더 크고, 더 세밀하다. 책들은 소프트 커버에, 당시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책이 그렇듯 다수가 노란색 계열이며, 조르주 샤르팡티에가 출판한 것이 대부분이다. 전경에 펼쳐진 책이 있고 오른쪽에 파란색 표지의 책이 있어서 대비를 이룬다. 그 책은 ‘모파상의 걸작’인 《벨아미(Bel-Ami)》거나, 어쩌면 ‘지금 막 읽은’ 《몽토리올》일지 모른다.
--- p.108
프로방스에서 빈센트의 손을 잡은 길동무는 보다 덜 진지한 책, 파리에서 읽은 것보다 더 재미있고 유쾌한 책이었다. 빈센트는 도데의 《타라스콩의 타르타랭》과 그 뒤에 나온 《알프스의 타르타랭(Tartarin sur les Alpes)》의 넉살좋은 주인공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표지 삽화부터 희극적인 내용을 암시한다. 시골뜨기 주인공이 허풍을 치고 다니다가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 도데의 풍자소설은 프랑스 남부 사람, 특히 타라스콩 토박이를 희화화했기 때문에 빈센트는 눈길 닿는 모든 곳에서 그런 희화적인 인물-‘순수한 도미에’를 생각나게 하는 인물-을 보았다[695]. --- p.122
가족의 편지를 보면, 그들이 저녁마다 한자리에 모여서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족들은 성경에서부터 시와 동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작품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1 서로 공유하고 싶은 편지도 큰 소리 읽었다.2 그렇게 친밀하게 시간을 보낸 탓에 가족의 유대가 아주 단단했다. 1874년에 아버지 테오도루스는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우린 저녁에 자주 소리 내어 책을 읽는다. 지금은 불워의 《케넬름 칠링리Kenelm Chillingly)》를 읽고 있어. 아름다운 문장이 아주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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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가장 혼란스런 몇 달 동안, 주변의 모든 환자가 ‘책 한 권 없고, 기분을 전환할 아무것도 없이’[776] 식물처럼 ‘지독한 나태함’에 빠져 있을 때도[866], 빈센트는 삶의 오랜 신조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공부하지 않으면,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155]. 그는 다른 환자들을 괴롭히는 ‘역병’과도 같은 ‘나태함’에 ‘저항하는 것이 그의 의무’라고 믿었다[801].
--- p.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