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만 코디네이션을 하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은 외출을 준비하며 옷이라는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된다. 고급스러운, 엄숙한, 유쾌한, 실용적인, 활동적인, 그리고 그 중에는 ‘잘 몰라서 유행에 올라탄’ 콘셉트도 가끔 보인다. 아니, 자주 보인다. 다만 눈에 띠지 않을 뿐이다. 패션에 의욕이 부족한 절대다수 그들은 메가트렌드가 고맙다. 고민에 휩싸이는 대신 유행이 정해주는 대로 따라가면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다.
--- p.40, 「미필적 유행」 중에서
현관문에 붙은 전단지가 이렇게 말한다.
“방학 때 노는 자녀
수학은 제대로 시킵시다
자녀 명문대 보내고 싶으시면
모든 걸 멈추고
수학만큼은 방학 때
전문가들에게 맡기시죠!”
방학 때 노는 자녀는 느끼고, 말하고, 인식하며 인생의 기초를 다진다. 그런 잘 노는 자녀를 갑자기 사이비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어디서 허튼수작이야. 그리고, 전문가 행세를 하고 싶으시면 모든 걸 멈추고 전단지만큼은 디자인 전문가에게 맡기시죠!
--- p.62, 「노는 자녀」 중에서
어른으로 살다 보면 곳곳에 도사리는 온갖 책임과 기만, 기대와 분노의 냄새에 질려서 에라 모르겠다, 몽땅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그런 날엔 게임기를 켜고 감정의 냄새를 세척한 무색무취의 시간에 뇌를 푹 절이고 싶다.
--- p.80, 「그렇게 지구를 떠나」 중에서
친해서 자주 만나는 사이일수록, 함께 생활하는 가족일수록 이 자국은 더 많이 쌓이고 쌓인다. 누구나 서로의 상처를 안다. 아는데 여전히 서로 상처 주기를 멈추지 않는다. 인간은 기어코 자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투사하고야 마는 것이다.
--- p.102, 「팬케이크 반죽을 부으며」 중에서
아침에 잠에서 깨면 SNS 알림부터 확인한다. 기대보다 ‘좋아요’를 적게 받았군. 새벽에 보낸 업무 메일은 답이 왔을까. 알림 소리가 나면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스마트폰을 찾아 들고, 화면을 밀어서 잠금 해제 한다. (...) 말이 좋아 소셜네트워크지, 사실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글로벌 기업 서비스에 출석 체크할 뿐이잖아. 그곳에는 수많은 랜선 친구들이 쏟아부은 글자와 이미지가 있다(광고도 있다).
--- p.145, 「모든 것이 융합되는 초연결 시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