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니체는 자신과 비슷하게 진지한 성향을 지닌 친구 구스타프 크룩, 빌헬름 핀더와 함께 사립 교육기관인 ‘칸디다텐 베버’로 학교를 옮겼다. 여기서 피아노 수업을 받고, 나중에 매우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갖추게 된다. 니체는 특히 즉흥연주를 매우 좋아했다.
--- p.16~17
“가장 따뜻하고 진심 어린 방식으로 리하르트 바그너와 친해지고 있어 너무 행복하다. 이 시대 최고의 천재이자 최고의 인간, 그 누구와도 결코 비교 불가능한 인물! 2주 혹은 3주마다 한 번 나는 피어발트슈테터 호수 근처에 있는 그의 저택에 며칠간 머물곤 한다. 바그너와 맺은 친분이야말로 쇼펜하우어로부터 받은 것 다음으로 내 삶에서 얻은 최고의 결실로 생각된다.”
--- p.30
“나는 자유에 열광하는 사람이다.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얽매이지 않는 영혼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여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다 가느다란 끈에 묶인 내가 느끼는 고통이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 p.60
니체는 가장 먼저 문헌학을 포기하고 문헌학에서 벗어났으며, 그다음에는 쇼펜하우어 및 삶의 근저에 놓인 맹목적 의지를 말하는 그의 형이상학과 함께 바그너 및 음악을 통한 그의 문화 개혁의 이념에서 벗어났으며, 마지막으로는 너무나 믿고 의지했던 친구들마저도 포기했다. 니체는 철학의 과제란 바로 그러한 벗어남에 있는 것으로, 믿음이나 모든 종류의 정신적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는 것으로 보는 법을 배웠으며, 끝없이 새로 몰려드는 믿음으로부터 끝없이 새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이 되는 법을 배웠다.
--- p.91
니체에 따르면 철학을 하게 만드는 것은 항상 ‘위기 상태’다. 특히 병상에 있는 철학자의 경우 더욱 그렇다. 니체는 아픈 상태라는 것을 메타포로 사용해 일반화하는 가운데, 모든 철학자는 비록 생리학적으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도덕적으로는 이미 아픈 상태였고, 여전히 아픈 상태에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철학자들은 병들어 있으며, 또 병이 들어 아프기 때문에 철학을 한다는 것이다.
--- p.96
니체는 자신이 현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로, 이미 일찍부터 지니고 있던 ‘중립성’과 “삶의 전체 문제와 연관해서 그 어떤 편견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성격”을 언급했다. 그런데 자신의 이러한 성격은 어떤 ‘숙명’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이 숙명이란 “수수께끼같이 표현하자면, 나는 나의 아버지로서는 이미 죽었고, 나의 어머니로서는 아직 살고 있고 그렇게 늙어가고 있다”라는 것,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병약함이며,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은 파괴될 수 없는 생명력이라고 말한다.
--- p.99~100
니체의 철학적 태도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모든 인식, 모든 앎, 모든 지혜를 고독으로부터 생각해내는 것, 그리고 그 조건들을 모든 개체가 자신의 특수한 실존에 따라 “내던져져” 있는 피할 수 없는 고독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 p.110
니체는 학자와 “철학적 노동자”를 “명령하는 자이자 입법자”로서의 “진정한 철학자”와 구별한다. 학자는 철학의 영역에서도 역사적 지식을 지식 그 자체를 위해 습득한다. 철학적 노동자는 체계를 구축하며, 철학적 지식을 정리하고 분류하기 위한 범주와 방법과 도식을 완성해내고, 이것을 일목요연하게 숙고 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다루기 쉽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오래 걸리는 모든 것을, 더 나아가 시간 자체도 단축하고 과거 전체를 장악”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 시작하기 위한 조건들을 만들어낸다.
--- p.119
니체는 가능한 한 다양한 학문과의 연관 속에서, 가령 한편으로는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의학을,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학, 미술사, 신화학, 종교학, 신학 등을 아울러 고려하여 자신의 철학을 했다. 특히 그 당시 새로운 학문이었던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풍속학, 신경의학, 정신의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 p.121
“〔음악이〕 나를 나에게서 벗어나게 한다. 음악은 나를 나에게서 깨어나게 한다. 마치 아주 멀리서 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감싸 안으며 느끼도록 하는 것 같다. 음악은 그렇게 나를 강하게 만든다. 음악의 저녁이 지나가면(나는 〈카르멘〉을 네 번 들었다) 그다음에는 매번 결연한 통찰과 착상들로 가득 찬 아침이 온다. 이것은 매우 신기한 느낌이다. 마치 좀 더 자연스러운 어떤 요소 속에서 헤엄친 것 같은 기분이다. 음악 없는 삶은 진정 오류이며, 고역이며, 유배지다.”
--- p.130~131
니체의 철학적 글쓰기의 특징적인 세 형식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포리즘 저서, 철학시, 시가〔노래〕다.
--- p.150
니체는 가능한 한 학술 용어들을 포기한다. 그 대신 일상적인 말들에 새로운 무게를 부여하며(가령 “창조하다”, “베풀다”,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 당시에는 아직 낯설게 보였던 복수형을 사용하고(“바람직함들”, “미래들”, “도덕들”, “문화들”), 반어적이고 냉소적인 느낌으로 어형을 변화시키며(가령 “비천화”, “애국주의 나부랭이”, “쇼펜하우어 짓거리”), 가치 전환적인 합성 단어(가령〔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이성의 가책”, “필요〔에 따른〕 진리”) 등을 만들어냈다.
--- p.161
니체에 따르면 “모든 문체에서 그 의미”는 어떤 상태를, 더 정확히 말해 어떤 파토스의 상태를 기호를 통해, 또 이 기호들이 가진 속도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즉 단어 자체로는 전달할 수 없는 어떤 “내적인 상태”를 전달하는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텍스트에서 경직된 개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안쪽에서, 보통의 경우라면 오직 개인적인 대면에서만 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말해 표정과 몸짓과 태도와 목소리가 마치 전조〔조옮김〕를 하듯 계속 바뀌는 가운데 그렇게 ‘내적 상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시키고자 했다.
--- p.166
니체 해석가 중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영향을 끼쳤던 하이데거는 특히 니체의 철학을 몇 개의 기본 학설로, 가령 신의 죽음 및 니힐리즘, 위버멘쉬,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의 학설로 환원하고, 이 학설들을 텍스트의 맥락에서 분리해 ‘하나의’ 학설 안의 연관 내용으로 주장했다. 하이데거는 니체의 철학에서 전통적인 방법론에 따라 분석할 수 있는 하나의 전통적인 체계를 찾아내고자 했고, 그에 따라 니체의 철학적 글쓰기에서 특징적인 유의미한 형식들을 전적으로 무시했으며, 그다음 결국 이 체계를 “자기 안에서 눈이 먼” 형이상학으로 해석했다.
--- p.181
니체는 삶에서나 글에서나 명백하고 단호히 ‘애매하지 않고자’ 했다. 니체는 기독교와 바그너의 유혹적 애매함을 비판했으며, 오직 “디오니소스, 저 위대한 이중성이자 유혹자 신”만이 예외였다. 니체의 글이 모순적이거나 애매하게 읽힌다면 그것은 그의 개념들을 그때그때의 콘텍스트에서 떼어내어 그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일반화하기 때문이다.
--- p.182
니체가 철학적 과제로 삼은 것은 한편으로는 수천 년간 행해온 자연의 인간화〔의인화〕를 멈추는 것, 즉 “자연의 탈인간화”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화되지 않은 (혹은 덜 인간화된) 자연을 척도로 인간이 새로운 방향 설정을 하는 것, 즉 “인간의 자연화”다.
--- p.220
마지막 인간 혹은 소인배는 영원회귀 사유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역겨움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대상이다(“아, 역겹고 역겹고 또 역겹다!”). 이 구토의 감정이 니체가 이 책에서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표현하는 영원회귀 사유의 유일한 내용이다.
--- p.259
니체적 의미에서 큰 정치의 대상은 유럽의 전망이었다. 이 전망은 당시 첨예화된 민족주의 시대에서는 이례적인 것이자 미래를 향한 선구적인 것이었다. 니체는 이것을 유대인의 역할에 대한 전망과 연결했는데, 반유대주의적 경향이 점점 공격적으로 되어가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로 볼 때 더욱 낯설고 드문 것이었다.
--- p.292